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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Feb 12. 2019

1만 년 동안의 화두 1

이용범 님의 책 <1만 년 동안의 화두>를 드디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550쪽에 이르는 제법 두꺼운 책입니다. 저자가 책 뒤에 밝혀놓은 참고 도서만 200여 권에 이릅니다. 인용된 도서들의 면면 또한 예사롭지 않은 원저들입니다. 당연히 책의 내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지요. 2년 전에 한 번 읽고서 나중에 반드시 다시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던 책인데 이제야 다시 펴 들게 되었습니다.    


책의 주제는 우리의 영원한 숙제인 ‘신과 인간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입니다. 저자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자기가 인지하고 깨달은 생각을 동서양의 신화와 고전, 그리고 수많은 예제와 실증들을 넘나들며 설명해 들어갑니다. 만약에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자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책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라고 당당하게 서두에 밝혀 놓고서.       


제1장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 인간이 창조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로 책이 시작됩니다. 성경과 외경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창조의 이야기들을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원전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간략히 요약해 설명해주므로 성경과 그리스 신화를 다시 한번 공부하는 배움이 있습니다. 여러 학자 및 현인들이 죽음에 대해서 어떤 말들을 했는지 들려줍니다. 따라서 책을 한 권 읽으면서 여러 권의 책을 읽는 효과가 있습니다.     


인간에게 생의 본능인 에로스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가 동시에 잠재해 있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삶도 알지 못하거늘 내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 공자 / 죽음이 개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죽음이 결코 ’나‘에 의해서 소유될 수 없으며, ’나‘는 결코 죽음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장 폴 샤르트르 /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죽음은 우리 곁에 있지 않으며, 죽음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저 세상에 있기 때문에 산 자나 죽은 자 모두 無와 마찬가지다. - 에피쿠로스 / 죽음은 존재하지 않을 때만 존재하고, 존재할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루드비히 A. 포이어바흐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닭은 목이 잘린 상태에서도 달려갈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닭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영화 <바벨>에서도 목격한 장면입니다. 머리가 없는 닭이 달려 나가는. 과연 그 닭을 달리게 명령한 주체는 무엇일까요? 머리가 없는 닭이 공포를 느낄 수 있을까요? 어떤 의지가 목 없는 닭을 달리게 한 걸까요?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2007 4.11   산비       



“오랫동안 살아남을 훌륭한 책으로서 고전, 오늘의 고전과 내일의 고전을 찾아 읽는 것은 도무지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훌륭한 존재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래서 훌쩍 크고 한껏 깊어지기 위해서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추리하며 가슴 깊이 고전을 읽으며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나라. 이는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이자 고전을 읽는 바람직한 방법이다.”    


<1만 년 동안의 화두>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다양한 분야의 예제들이 인용되고 있어 지식적으로 얻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죽음에 대해서 논하면서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연구가 소개되고 있고, 풍장이나 조장, 굴장屈葬, 총장塚葬등 각 민족의 장례 의식 같은 것도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시황의 이야기가 길게 설명되어 있는가 하면, 최신 의학전문지에 실린 실험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살에 대한 장에서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쇼펜 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인용되고 있고, 일본의 할복 문화의 기원이나 고래나 나그네 쥐 등 동물들의 자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죽게 되는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장자의 아내의 죽음이나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테파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물론 여러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끌어온 것들이지만,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 신화에서부터 최신 의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섭렵하여 적절하게 인용하는 저자의 박식함이 돋보입니다. 나중에 꼭 한 번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07 4.12         산비      



콘텐츠가 없는 사랑은 공허합니다. 그냥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면서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사랑을 배격합니다. 사랑이 완성되어 가는 단계에서 그런 과정이 필요하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오래 존속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힘을 바탕으로 무언가 작업을 하여 알곡을 맺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경작입니다.    


<1만 년 동안의 화두>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윤회설과 부활설이 발생하고 유래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기독교 성립의 초기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네요. 기독교인이 읽으면 이단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논증적인 설명이므로 받아들이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고르디아스의 매듭’과 이것을 해결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장자에 나오는 호자와 계함의 도술 시합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고대 문명에 대한 이야기, 깨달음에 관한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 선불교와 화두에 대한 이야기, 인도의 요가 수행, 호흡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리고선 결론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일종의 환각상태일 거라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광대버섯을 이용한 음료라든가 대마, 페요테 선인장, 나팔꽃 씨앗 등이 환각을 유도하는 매개로 사용되었으며, 호흡을 느리게 하고 명상에 드는 것도 몸속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면서 뇌가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지는 걸로 설명합니다. 대개의 수도자들이 히말라야 같은 고산의 동굴에서 수행하는 것도 희박한 산소 속에서 뇌에 환각작용을 일으키기 쉬운 조건 때문이라는군요.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2007 4.18      산비      



“구름은 맑고 바람은 가벼운 한낮에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시냇물을 건너간다. 사람들은 나의 즐거운 마음을 모르고, 한가함을 탐내 소년처럼 논다고 말한다.”    


소년처럼 놀면 좀 어떻습니까?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것이지요. 바람을 느끼고 구름을 쳐다보며 바보처럼 입을 헤벌리고 있으면 좀 어떻습니까? 실성한 사람처럼 한바탕 웃어젖히면 또 어떻습니까?    


깨달음을 얻은 도인들은 모두 소년의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도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일이 마냥 즐거운 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비아냥댑니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책을 읽는 일이 즐거운 일이라고 아무리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산이라면 기겁하는 사람에게 산에 오르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입에 침이 튀도록 말해봐야 알기나 하겠습니까?    


옛 고전을 해독하고 연구하는 일이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즐거움을 아는 사람끼리 그 즐거움을 교감하고 공유하며 살아갑시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멋스러움에 으쓱해하며 살면 됩니다. 자만이나 교만이 아니라 자긍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고 다독이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게다고 우리는 서로를 알아주는, 나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모른 척해도 당신만 나를 인정해준다면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이 한 세상 살다가 갈 것입니다.      

  

2007 4.18     당신의 도반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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