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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Feb 13. 2019

1만 년 동안의 화두 2


 

“건강한 사람을 만나라.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많이 만나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만나라. 운동도 같이 하고 공부도 같이 하라.” - 황성주    


<1만 년 동안의 화두>, 오늘은 진화와 창조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지구 상에 어떻게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창조론자들의 반론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은 다시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설화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과 논문들, 실험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설명합니다. 전문적인 얘기를 물 흐르듯이 진행해 나가는 저자의 역량이 감탄스럽습니다. 책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훨씬 흥미진진해집니다. 나중에 읽어보시면 제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공감하시게 될 것입니다.    


‘삶의 존재방식에 대한 거울의 역할’, ‘생의 바퀴가 점철해 나가는 방향을 주시할 수 있는 역사적 투시안’ 결국 역사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예시해주는 것이겠지요. 그것을 인식하며 사는 삶과 무시하고 사는 삶의 결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저도 그저 ‘열심히’가 아닌 ‘존재 이유가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프로네 님의 채찍과 당근을 원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그럼.    


2007 4.19      산비         



“나와 당신의 이 결합이 세상의 어느 사랑에나 연애와도 다르다는 것을 - 참으로 이렇게도 깨끗하고 자랑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의 이 영혼 깊이서부터 가지는 교섭을 세상의 후속들은 이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해를 하려 해도 이해를 못할 것입니다.”    


“내게 당신을 있게 하고 또한 당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 마련해 주신 이 목숨에 대하여 나는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 오는 궂은 날씨가 저의 마음을 흩으러 놓습니다. 청마 유치환의 戀書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몇 장 읽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고, 그의 애절함이 나의 애통함이 되어 나를 몸서리치게 합니다. 가까이 가려해도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멀어지려 해도 이제는 멀어지는 것이 불가능한, 운명의 사슬이...    


2007 4.20      산비   



어제는 제가 너무 감상에 치우쳤었나 봅니다. 잘 살다가도 가끔은 그렇게 울컥하는 무언가가 가슴에 치밀어 울적해지곤 한답니다. 그냥 이대로 살아가면 그만인 것을...    


‘계획이 없으면 차질도 없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서 치밀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거나, 하루 종일 아무 계획 없이 빈둥거려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삶의 여백이 필요한 것이지요.    


'Tous les matins de l'amour ont un sour'    

“사랑의 모든 아침은 다가오는 낮보다 더 환하고 찬란한 새벽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사랑의 저녁은 이윽고 덧없는 밤에 다다른다. 사랑에도 봄과 가을이 있고, 사랑에도 아침과 저녁이 있다. 사랑도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다. 사랑에 봄이 있다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만물 가운데 처음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듯이, 사랑의 겨울도 있는 것이다.”    


오늘은 마음을 다잡고 <1만 년 동안의 화두>를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저자는 인류의 기원을 짚어나갑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베이징 원인, 네안데르탈인을 언급하고 만약 아담이 있었다면 그는 흑인이었을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     


화석과 진화를 분석하는 도구로 유전학, 분자생물학이 대두되고, 여기서 사회생물학이 발전합니다. 꿈과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 마음의 장, 마음 바이러스 ‘밈’에 대한 이야기, 결국 파동과 입자,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우리가 공부했던 카프카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도 등장합니다. 갈수록 오리무중입니다.   

 

인간은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일까요? 신은 있을까요? 인간이 없는 데 신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인간은 무기물의 정밀한 상호작용에 의하여 구성된 하나의 기계장치에 불과한 걸까요? 마음이라는 것도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화학물질들의 연쇄작용일 뿐인 걸까요? 결국 ‘나’는 누구일까요?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입자는 실재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하나의 경향이며 가능성이다. / 전자가 궤도 위에 있거나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2개의 가능한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다. 가능한 2개의 세계를 하나로 고정시키려는 것은 당신이다. 당신이 개입하지 않으면 물질은 유와 무, 2개의 가능성 속에 존재하고 있다. / 전자는 정적이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그칠 줄 모르는 운동과 에너지의 율동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들의 움직임은 동적이고 순간적이다. 그들은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아니고 무엇이랴.”    


2007 4.24        산비    



“숨겨진 진실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얽힌 듯 보이는 현실을 명쾌하게 만든다. 어두운 것만 같은 현재를 이해하는 지혜가 되기도 한다. 죽은 듯 서 있던 겨울나무에서 푸른 잎을 보고 먹구름 뒤에 감춰진 파란 하늘을 상상할 수 있다면 삶은 훨씬 따듯하게 다가올 것이다. 삶의 본질 그 자체는 언제나 환하기 때문이다.” - 류진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관찰력. 사건의 이면을 파악할 수 있는 사고력.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인지력. 내면의 생각을 탐지하는 육감. 이것을 보고 저것을 유추해내고, 지나간 것을 보고 다가올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상상력의 바탕이 되지 않을까요?    


요즘은 산의 빛깔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관찰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연둣빛 물감이 번져나가듯 산이 푸르러집니다. 면적이 넓어져 갈 뿐만 아니라 연두 자체의 색감도 점점 진해집니다. 연한 연두에서 점점 초록빛이 진해져 갑니다. 결국은 청록색 녹음이 우거지게 되겠지요.   


“인간이라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전 우주적인 힘이 동원될 필요는 없다. 가이아의 복수는 인간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인간은 꼭 외부적 힘이 작용하지 않아도 그대로 놓아두면 스스로의 이기적인 욕망을 불사르다가 흔적도 없이 멸종되어버릴 것이라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도 멸종되지 않을까요? 유성과의 충돌이 됐든, 핵전쟁이 됐든, 환경파괴로 인한 빙하기의 초래가 됐든, 그도 아니면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태양이 그 에너지를 다하고 적색거성으로 식어버리면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구의 수명은 무한대가 아닙니다. 결국 지구도 없어지고 인간도 없어지고 더불어 신도 없어지는 날이...    


‘깨어나라, 만물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신’    


글에 붙어있는 제목들이 자극적이지 않습니까? 이제 점점 이야기의 범위를 좁혀가는 듯합니다. 노아의 방주와 유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대의 신화들에 대해서 말하고 신화가 신화를 만들어내는 기전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붓다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저자가 결국 결론적으로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2007 4.25      산비      



‘마침내 신을 살해하다’

‘인간에 대한 절망 또는 희망’

‘절망 위에 세운 가냘픈 허구, 종말론’    


니체와 프로이트가 말하는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악마성에 대한 이야기, 종말론과 성경에 나타난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으로 이용범 님의 <1만 년 동안의 화두> 읽기를 끝마쳤습니다.  

  

우선 저자의 박학다식함이 돋보입니다. 구슬을 엮어 보물을 만들어내듯이, 어떤 주제에 관련된 문서들을 선택하고 발췌하여 요약해서 설명하는 본새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그가 이 한 권의 책을 집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을지는 방대한 인용 도서의 목록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신의 부재입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 밑바닥부터 저인망으로 훑어 나오면서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갑니다. 독자가 빠져나가려고 하면 살짝 그 심리를 건드리기도 하고 약을 올리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 나갑니다.     


그의 주장에 동의할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가 이미 배우고 익혀왔던 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신화와 성경과 불경에 적힌 진리들의 이면에 대해서 한 번쯤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사유해볼 만한 화두는 던졌다고 봅니다.    


차근차근 읽어보시고 많은 배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뭐 이런 책이 있나’ 싶을 정도로 다소 충격적이었는데, 두 번째 읽으니 책 내용이 머리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김치가 익듯, 홍어가 삭듯, 삭여지는 맛이 있습니다.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2007 4.26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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