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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Feb 15. 2019

삶의 기술



오늘부터는 안셀름 그륀의 <삶의 기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좀 무거운 주제의 글을 읽은 관계로 가볍게 기분 전환 삼아 읽을 만한 책을 골랐습니다. 가톨릭 신부인 그륀의 충고들은 내 안에 거하는 하느님의 존재를 기본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무신론자인 이용범 님의 책을 읽고 난 직후라서 그런지 묘한 대비를 느끼게 됩니다.    


“항구에 머무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살아지지 말고, 살라”

“안을 보는 자란, 자신에게로 침잠한 내향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밖의 치열한 현실 세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을 볼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우리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도 않는다.”    


그륀 신부님이 들려주는 삶에 대한 성찰들입니다. 우리와 정서가 조금 달라서인지, 번역상의 문제가 있는 것인지 글이 약간 겉도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번역서들이 많은 오류를 안고 있다고 합니다. 번역자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터인데 왜 그런 것일까요? 번역의 가치를 너무 과소평가한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번역을 창작에 버금가는 가치 있는 일로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번역가들이 많다고 하지요.      

  

“이해한다(understand)는 서 있다(stand)와 관련이 있다. 서둘러 지나가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서 있는 것, 조용해지는 것은 내 안의 희미함이 명료해지기 위한, 안개가 걷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슈리푼자도 ‘그저 고요하라’고 가르쳐주었듯이 그륀 신부도 서둘지 말고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색한 사람은 이를 악물고 일한다. 그는 충분히 얻지 못했다는 불안감 때문에 일을 중단하지 못한다. 인색함은 탐욕이다. 이러한 탐욕에 떠밀려 가는 사람은 계속해서 일을 해야만 한다. 이런 사람은 쉬면서 즐기지 못한다. 즐기면 재산이 줄어들 테니까.”    


“자기 내면의 샘을, 내면으로부터 일이 솟아 나오게 하는 신성한 정신의 샘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흐른다. ‘흐름’ 안에 있는 사람은 지치지 않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일을 하더라도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고, 이를 악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내면으로부터 일이 솟아 나오게 해야 한다는데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마음먹으려고 노력은 해야 하겠지요. 그륀 신부도 ‘흐름’을 중요시합니다 흘러가는 대로, 물 흐르듯이 삽시다. 무릇 ‘道’ 도 물과 같다고 하잖아요.     


“끊임없이 일에 몰두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마음의 한 형태일 수도 있다.”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읽어야 하고 하다못해 음악을 듣고 있어야 하고, 그런 것도 어쩌면 과거의 아픔을 떠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무의식의 소산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동물이 원래 나약한 존재라서, 늘 불안과 두려움에 쌓여있습니다. 잠시 마음을 놓고 있으면 온갖 시름과 걱정들이 자기도 모르게 내안에 스며듭니다. 그걸 떨쳐내려고 숨이 턱에 차게 달리고, 땀을 쏟으며 산에 오릅니다.     


“기적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에게 일어난다. 정원사의 일은 봄의 길을 준비해 주는 것일 뿐, 봄을 빨리 오게 할 수는 없다. 봄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온다.”    


편한 밤 되십시오.    


2007 5.3    산비        



“자신을 억압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의 삶은 오히려 쉽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말로 중요한 것에 눈을 뜨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중단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성숙하도록 내버려 두고 나름대로의 리듬을 찾도록 한다. 모든 것에서 절제를 찾는 것이다. 몸과 영혼에 이로운 것을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남을 더 사려 깊은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 안에서 기술이 생긴다.”  


<삶의 기술> 행복/ 여유/ 일/ 관계/ 친구/ 사랑/ 변신/ 동경/ 삶, 이렇게 전체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친구’ 장을 읽고 있습니다. 좋은 문구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주에 태양이 없는 것은 인생에 우정이 없는 것과 같다.”

“친한 친구는 같은 것에 대해 함께 침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등산을 하다가 갑자기 눈앞에 멋진 장관이 펼쳐지면 함께 침묵하면서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감상하고 내면에 담아두었다가, 언젠가 이때의 체험에 대해 나중에 이야기 나누는 것, 그것이 우정이라고 합니다.     


“친구는 상대가 비밀을 간직하도록 허락하고 상대를 위해 고요한 공간을 마련해 준다.”

“친구란 너의 마음에서 울리는 멜로디를 듣고, 언젠가 네가 잊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 멜로디를 너에게 다시 일깨워 주는 네 마음의 공명이다.”

“친구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즐겁지 않다.”

“친구와 함께 가는 길은 결코 멀지 않다.”     


프로네 님처럼 좋은 친구가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함께 걸어가니 즐겁습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들이 나오면 또 편지 보내드릴게요. 그럼.    


2007 5.4     산비         



지식 집약적인 밀도 높은 책도 읽어야 하고, 때로는 마음을 가볍게 하는 삶의 성찰을 담고 있는 책들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몰아세워 일에 몰두할 필요도 있지만, 가끔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조화와 중용을 이룰 때 삶은 빛나는 것이겠지요.   

 

“항상 일에 몰두하는 사람, 일로 도망치는 사람은 우정을 위한 시간도 없고, 다른 사람의 친구가 될 능력도 없다.”

“그 어떤 우정도 권태를 이겨내지는 못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의 샘이 고갈될 때 지루함은 생겨난다.”    


같이 있는 것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루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일을 함께 해야 합니다. 삶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진리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함께 누려야 합니다. 그 작업은 평생 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에는 당연히 내적인 고독도 필요하다. 고독은 내가 스스로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고독은 내가 친구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조건이다.”    


가끔은 스스로 고독 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고독은 자기 내면과의 대화입니다. 고독을 씹음으로써 자기 속에 숨어있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조건이 됩니다.    


“우정은 사랑으로 변할 수 있고, 사랑은 우정과 결합될 수 있다. 우정은 사랑을 더 깊게 하고, 사랑은 우정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독일어로 우정이라는 단어 ‘frija'는 ’ 자유롭다 ‘와 ’ 사랑한다 ‘는 의미를 포함한다. 자유와 사랑이 우정 안에서 만난다.”    


지금 우리의 관계가 그러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우리의 관계입니다. 자유와 사랑과 우정이 결합될 수 있다고 그륀 신부님은 분명히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오묘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자신을 참고 견디는 사람만이 상대를 자유롭게 해 주고 현재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한다면, 언제나 상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떠나려는 상대를 붙잡기 위해 그가 바라는 것을 모두 이루어 주려고 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상대를 싫증 나게 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람과 기대는 늘 배신을 낳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 안에 있는 사랑을 믿기 바란다.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용기를 내라. 사랑에 매혹당하도록 너를 내버려 두어라. 사랑이 너를, 너의 진정한 동경을 만족시켜주는 보다 깊은 사랑의 비밀로 데리고 가게 하라. 문제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더 이상 소유욕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랑, 흐르는 사랑, 사람들을 매혹하는 사랑, 삶의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삶의 기술도 배워야 하고, 사랑에 대해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알게 되면 부질없는 사랑에 매달리지 않게 됩니다. 나와 너, 유한성과 영원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2007 5.4     산비      



안셀름 그륀의 성찰을 담은 책 <삶의 기술>을 끝냈습니다. 익히 들어왔던 평범한 삶의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삶이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친구, 사랑,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고, 오늘 읽었던 ‘동경’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움을 줍니다.    


“동경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인간은 동경과 함께 자기완성의 길을 내디딘다.”    


‘동경’이라는 단어에 대해 사전을 찾아보니 ‘어떤 일에 마음이 팔려 그것만을 그리워하며 애틋하게 생각함.’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륀 신부가 말하는 뉘앙스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 독일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맞춤한 단어가 없어 ‘동경’으로 대신한 느낌입니다. 사전적 의미에 기대나 꿈의 의미를 조금 더 담아야 맞을 듯, 욕망이나 목표와는 다소 대비되고.     


“동경은 네가 삶의 갈등 한가운데서 갈등을 잠시 접어 둔 채 침착함을 유지하도록 해 준다. 기대를 채워주지 않음으로써 너의 동경을 심오하게 유지할 수 있다. 너는 좌절과 슬픔에 반응하지 않고, 내면의 자유와 확신에 반응하게 된다. 그 무엇도 동경을 확신하는 너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다. 과감히 동경하라. 그 안에서 너는 밝음과 평온함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기대가 채워지면 동경을 잃게 됩니다. 약간 모순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채우고 싶지만 채우지 않고 놔둠으로써 동경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어쩌면 사랑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희망과 불안이 날씨를 바꾸지 못한다.”(티베트 격언)

“한 가지 기쁨이 백 가지 근심을 몰아낸다.”(중국 격언)  

  

“몸은 무의식적인 조건반사에 의해 표현되기 때문에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이성보다 더 솔직할 때가 있다.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몸의 반응과 표현에 감사해야 한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흥분이 극에 달하면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나옵니다. 그것이 오히려 이성적 생각보다 더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이 여기저기가 아프게 되는 것도 어쩌면 우리 마음과 영혼이 문제가 생겨서 인지도 모릅니다.    


“충만한 삶이란 다시 사랑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가 조건 없이 자신에게 몰두하고,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좋은 밤 되십시오.    


2007 5.7   당신의 든든한 친구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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