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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Feb 18. 2019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오늘부터는 ‘라인홀트 메스너’가 쓴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생의 고비를 만난다.”     


몽골을 가로지르는 사막 ‘Gobi'와 우리말 '고비'가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저자 라인홀트 메스너는 ‘행동하는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이 시대 최고의 등반가이자 모험가로서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의 8000미터 급 14봉을 모두 완등 한 사람입니다. 세계의 극지들을 탐험하고 극단적인 생존 속에서 자아실현을 추구해온 과정을 글로 써온 그는 25년간이나 열망해오던 고비사막 횡단을 나이 육십이 돼서야 실현에 옮깁니다.      


“사막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았다. 내 안에 있는 사막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체의 모험을 중단하고 5년간 유럽 의회 의원으로서의 활동을 해오던 그는 타성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시 한번 도전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관광객들이 접근 가능한 것은 단지 장소일 뿐이다. 그 장소가 지닌 비밀들에는 관광객들이 다가가지 못한다.”

    

장비가 발달하고 교통수단이 발전하면서 여러 극지와 오지로의 여행이 활발해졌지만 저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입니다. “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면 땅은 밖에 있거나 우리 아래에 있게 된다.” 두발로 땅을 딛고 걷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걸어서 가면 모든 게 넓다. 땅은 감각적으로 지각되고, 냄새를 맡게 되며, 놀랍고 경이로운 일들을 늘 숨기고 있다.”    


물질로 볼 때 사막은 붕괴된 돌산이어서 그 산만큼 융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준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게 해 줍니다.


사막을 직접 보고 겪고 오신 프로네 님이 이 책을 읽게 되면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빨리 읽고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2007 5.11      산비       


 

“자신감이 전부 사라지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이 결핍된 존재로서 자신의 무기력과 절망을 의식하고 자신이 결국 모래알처럼 버려졌다고 느낄 때에야 현세는 시작되는 것이다. 피안은 그 뒤에 있는 無(무)이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 한 라인홀트 메스너도 광활하고 망막한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홀로 헤매며 불안과 공포감에 사로잡힙니다. 그걸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치니 불안해지는 것일까요? 참으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다시 만나지 못하리라는 것은 둘 다 알고 있었다.”     


메스너는 끝없이 이어진 사막을 행군하며 중간중간 유목민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바디 랭귀지와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합니다. 유목민들은 하나같이 메스너를 귀한 손님으로서 대접합니다. 황량한 사막을 걸어서 횡단하는 한 인간에 대한 경외감이었을까요? 아니면 수천 년 내려온 그들의 문화적 전통일까요?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스쳐지나 보냅니까? 버스 안에서, 전철 안에서, 길을 걸으며, 산에 오르며... 타인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내게 당장 이득이 되느냐, 피해가 오느냐를 따지기 전에 이 우주라는 공간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격의 없는 애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우보천리’를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일가를 이룬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확천금의 횡재를 노리기보다는 한발 한발 걸어 나가면 결국 정상에 이를 수 있겠지요. 사막 한가운데 놓인 메스너가 오직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걸어 나갔듯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걷는 것 말고 없었다. 걸어야 해. 계속 걸을 수밖에 없어”    

계속 걸어 나갑시다. 그 수밖에 없습니다.    


2007 5.15       산비      



메스너가 길을 걷는 도중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는 말들이 인상적입니다. “그래 나는 늙은 등반가야.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해.” 그가 예전에 히말라야의 마천루들을 수없이 넘어 다녔지만 그 숫자들이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되뇝니다.     


“오늘은 이 산을 넘는 게 중요하고, 그게 내가 해내야 하는 과제야. 과거는 아무것도 입증해 주지 못해. 산은 오르는 매 순간이 처음이고, 그때마다 내가 얼마나 갈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것만이 중요해.”   

  

왕년에 어떠했는지는 지금 이 순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옛날에는 말이야...’ 그런 것들이 지금 이 순간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놓인 이 과제를 해내느냐, 해내지 못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늙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근력이 떨어져 있고, 지구력이 떨어져 있는데 예전의 내 모습만 상상하면서 나를 몰아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나는 ‘이걸 할 수 없어’ 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입니다. ‘고비사막을 최단시간에 횡단하기’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하지만, 어떻든 고비사막을 횡단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듯이.     


나이를 먹어서 늦게 영어,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것은 기억력의 문제로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늦게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특화해서 거기에 매진하면 됩니다.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단숨에 되지 않는다. 사막을 횡단하려면 작은 걸음들이 수백만 번 필요하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이 길의 한 부분이 되고, 경험의 일부가 된다.”     


너무나 멋진 문구입니다. 작은 걸음들의 수백만 번이 길이 되는 것입니다. 비행기로 단 숨에 갈 수도 있지만 그것은 길이 아닙니다. 내가 걸어간 자국들이 길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2007 5.16     산비      



“견뎌 낸 모험들보다 우리 기억에 더 깊이 박혀 있는 건 없다.”

“진리는 발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몇 장 남았던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것으로 라인홀트 메스너의 책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를 끝냈습니다.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며 여정을 이어가는 그의 글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극한 상황을 헤매고 있는 듯 조마조마 숨을 졸였습니다. 비록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삶의 진정성이란 두발로 땅을 딛고 걸으며 자연을 느끼고 사람과 부대끼는 체험으로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메스너는 여행의 후반부에 이르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발의 부상도 심각해지고 기력도 쇠해지고 모든 것이 절망스러워지자 집과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가족을 떠올리며 이를 악뭅니다. 도시의 안락함과 소란함이 지겨워 사막에 왔으면서 사막에서 다시 문명사회로의 환원을 갈망합니다.

     

엊그제 신문의 한 인터뷰 기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거벽등반을 주로 하는 등반가였는데 그도 그러더군요. 집에 있으면 산이 그립고, 산에 올라 죽을 고생을 하다 보면 집이 그리워진다고.   


오늘 새로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손녀이자, 황동규 시인의 딸인 황시내 씨가 쓴 에세이집 <황금 물고기>입니다. 20대 중반 독일 유학시절의 편지와 여행기들 그리고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들을 묶어서 낸 책입니다. 거기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이 한정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요? 그리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배경에 애정을 갖게 되고, 나아가 불필요한 욕망이나 중요하지 않은 모든 가치들을 과감히 버리고 생에 매진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행을 하는 목적이 아닐까요?”    


우리는 한정된 공간에 매여 있을 때는 자유롭게 떠나기를 갈망하고, 떠나서는 다시 자기만의 공간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합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봐야 역설적으로 우리가 누려왔던 삶의 일상적 배경들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삶의 모순일까요, 아니면 삶의 진정성일까요? 생각에 잠겨봅니다.    

편안한 휴식의 밤 되십시오.    


2007 5.17  당신과 나란히 길을 걷는 사람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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