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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Feb 20. 2019

남한산성

“봄은 남녀가 우정의 씨앗을 심어 싹 틔우는 계절, 여름은 서로 치열하게 싸우며 성장해가는 시기, 가을은 정열은 사라졌으되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열매를 맺는 계절, 겨울은 신화를 완성한 뒤 모든 것을 비우고 떠날 준비를 하는 시기.”  


봄이라고 하기엔 이제 너무 더워진 5월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냉기를 머금은 아침 바람이 이제 ‘춥다’가 아니라 ‘상쾌하다’로 다가옵니다.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며 출근하였습니다.    


“그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적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 강경파와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이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화친파의 말이 팽팽하게 맞섭니다. 문장의 대부분이 치고받는 대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말이 참 묘합니다. 말을 늘어놓고 그 말의 앞뒤를 뒤집어 놓아도 역시 말이 되는 이치가 재미있습니다.

    

뒤집힌 말은 모순을 넘어 역설이 됩니다. 역설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비장의 논리가 되어 가슴을 진동시킵니다. 그래서 재미있습니다. 독자를 김훈의 세계로 빨아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끌려들어 갑니다. 버텨보지만 무너집니다.    

 

2007 5.28     산비    


  

비가 좀 내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비가 한바탕 뿌려주어야 마음이 개운하고 후련해질 것 같은 기분입니다. 슬픔은 자연적이고, 기쁨은 인위적입니다. 가만있으면 슬퍼지고, 행위하고 움직여야 즐거워집니다. 조금만 삶의 고삐를 늦추면 우리 인간들은 한없는 슬픔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모래지옥 속으로 개미가 빨려 들어가듯이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금씩 우울의 늪 속으로 딸려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늘 고삐를 당기고, 채찍을 가하고, 발을 버둥거리며 달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래야만 한다는 삶의 당위가 나를 다시 슬프게 합니다. 참으로 알 수 없고, 힘든 삶의 여정입니다.   

 

<남한산성>을 읽고 있습니다.  


“본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야 보는 것인데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서...”    


말이 말을 치받고 들쑤셔 일으켜 세웠다가 짓누르고는 다시 꼬리를 잡고 그 말의 잔등에 올라타 물결치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김훈은 단단히 작정을 하고 이 책을 쓴 모양입니다.  한 번 읽고 되읽어 말의 뜻을 새겨보는 수밖에요.    


어제도 잠시 다룬 토론의 주제이지만, 과연 실용서를 읽는 것과 인문서를 읽는 것의 장단을 따질 수 있을까요? 효용성의 문제라면 실용서쪽이요, 기본 골격을 세우자면 인문서를 읽어야 하겠는데. 결국은 그것도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게 안배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어찌 보면 수필은 실용서요, 소설은 인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에세이는 삶의 진리들을 직접 드러내서 전달하고, 소설은 깊게 감추어두고 독자에게 발견의 몫을 돌립니다. 에세이 한 권을 통해서는 수많은 삶의 기술들을 얻을 수 있지만 소설을 통해서는 오직 한 두 가지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에세이를 통해 얻는 진리들이 쉽게 얻은 만큼 쉬 잊히는 데 반해, 파란만장한 주인공의 삶이 진하게 투영된 소설을 통해 얻는 삶의 진실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습니다.      

 

<남한산성> 이야기가 이제 종반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왕은 man이겠으나 민초들의 삶은 그야말로 a man입니다. 왕이 칸의 신하가 되던, 칸의 손에 죽어나가든 왕이 성 밖으로 나가야 성안의 민초들은 다시 생을 이어갈 것입니다. 부역으로 끌려 나와 억지 고생을 하는 백성들은 다만 한 끼니의 죽을 얻는 일이 급할 뿐입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2007  5.29     산비      



“삶의 구체성이 이념이나 관념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지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이 곳을 찾아 성문의 돌덩어리를 만지면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삶에 대해서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김훈이 독자 70명과 함께 남한산성 성벽을 따라 두 시간 여를 걸으며 소설의 무대에 대해서 설명하는 중에 하는 말입니다. “서날쇠는 혼자 웃었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왕도 아니고,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표였던 김상헌이나 최명길이 아니라, 한 낱 대장장이에 지나지 않았던 민초 서날쇠의 일상을 그리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는 것은 김훈이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말은 허망합니다. “임금이 없으면 백성도 없다” “백성이 없으면 임금도 없다” 목에 핏대를 올리며 언설을 늘어놓지만 손목은 가늘고 혓바닥만 긴 사대부들의 입씨름일 뿐입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으니 그냥 있는 것. 정답은 모르고 오답은 두렵기에 답을 쓰지 않고 있는 것. 성 안의 백성은 언 발을 부여잡고 돌을 나르고, 성 밖의 적의 포로가 된 백성들은 채찍을 맞으며 성을 무너트릴 사다리를 엮고. 살아야겠기에, 살아있기에...

    

루게릭 병을 앓는 스티븐 호킹이 우주의 비밀을 풀어나가고,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교사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고, 전신이 마비되어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패션지 엘르의 편집장 보비가 수만 번의 깜박임으로 책을 써내고, 과연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축복입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삽시다.    


2007 5.30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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