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깨달았다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먹고살고 죽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한 회의가 없어졌다 그거지. 의심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지.” 얼마 전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한 오현 스님의 말씀입니다.
“회의가 든다면 그것은 진짜 비전이 아니다. 믿음을 주지 않는 비전은 가짜 비전이다. 진짜 비전은 두려움을 넘어설 용기를 준다.” 오늘 아침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깨달음이나 비전의 모토는 결국 확신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일체의 의심이 없어지고 굳건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는 것. 물론 그 이전에 모든 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어보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겠지만. 일단은 의심하고 회의하고 깊게 사유하며 따져보다가 비로소 한 점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 이후엔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임석재 님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을 읽고 있습니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이 책을 쓰게 된 작가의 동기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동서양 두 건축 사이에 큰 이질성이 존재하지만 내면적 동인에 있어서는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유사점의 흔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우리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좋다는 맹신과 전통 건축은 재래적인 것이라 버리고 개량해야 한다는 논점의 중심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마치 뭐와 같다’는 직유법을 자주 사용하며 우리 옛 건축의 아름다움을 설명해나가는 본새가 아마도 최순우 님의 필체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마치 한복의 소매 끝처럼 은근한 곡선을 그리며...”라든가, “마치 여러 사람의 팔이 겹쳐지며 완급의 박자를 이끌어 가는 춤사위를...” “마치 공중에 떠서 날갯짓하고 있는 새처럼...” 같은 표현들이 그러합니다.
약간은 전문적인 용어들에 대한 지식을 얻는 재미도 있습니다. 팔작지붕이 의미하는 바라든가, 형태주의, 해체주의, 플루팅, 디이즘 같은 용어들의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인본주의와 신본주의가 교차하는 서양사의 흐름에 대한 역사적 배경지식도 곁들여 얻게 되는 소득이 있습니다.
꼼꼼하게 표식을 달아주신 부석사 무량수전에 대한 설명 부분들은 6월 마지막 날 계획된 영주 답사여행에 대한 기대를 더욱 부풀려 줍니다. 소수서원에 대한 부분도 자주 언급되고 있어 관심이 가고, 선비촌 체험을 통해 한옥의 처마선이나 입면의 구성적 아름다움에 대한 것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는 즐거움이 있으리라 봅니다.
부정을 부정으로 풀려는 서양의 해체주의 건축은 현실 세계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을 인간의 손으로 찾으려는 서양 문명 전체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데 반해, 똑같은 문제점에 대한 해결을 자연 속에서 찾아 부정을 긍정으로 풀려하는 한국적 사상에 대한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부정을 부정으로 풀지 말고, 참고 인내하며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의 미덕을 쌓도록 합시다.
2007 6.20 산비
“소년은 쉬 늙고 배움은 이루기 어렵나니 한 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 못가에 돋아난 봄풀의 꿈 미처 깨닫기도 전인데 뜰 앞의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라.”
배움엔 때가 있으니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주희의 ‘학문을 권하는 시’입니다. 조금 늦었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늦음을 탓하지 않고 늙어서도 배움에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전통 예술은 현실을 개선한다는 이상적 명분 아래 정형적인 예술 세계를 추구해왔지만 현실은 항상 몇 개의 법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수많은 무질서한 현상들로 가득 차 있다.”
“현실 세계를 유지하는 것은 각각 다른 다양한 객체들의 상호 견제력이 만들어내는 숨겨진 질서이지 선험적으로 가정하여 강요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무질서한 듯 하지만 그 속에 자연의 질서가 숨어 있는, 거친 돌 막 쌓기로 불리는 미가공의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기단들에 대한 해석이 서양의 콜라주에 맞닿아 있음을 설명합니다. 부석사 천왕문의 기단이 과연 그러한지, 기단의 계단이 정말 말아서 경내로 빨아올리려는 혓바닥처럼 생겼는지 꼭 가서 확인해봅시다.
사찰의 기본 산문 즉,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의 유래와 의미, 홍살문의 12개 살대와 태극문양이 갖는 의미들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건물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에 대한 공부를 끝내고 이어서 2부 ‘건축의 구성 원리’로 넘어왔습니다. 한국 전통 건축의 참맛을 느끼려면 건물과 건물이 조합되는 원리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 첫째가 햇빛과 풍수지리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한국 전통 건축에서 좇았던 최상위의 철칙은 바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을 보고 자연을 닮아가며 자연의 기운으로부터 혜택을 입음으로써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복되게 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공부하고 책을 덮었습니다.
장마는 장마인 모양입니다. 아침에 잠시 주춤했던 비가 오후 내내 이어지고 있습니다.
편한 밤 되십시오.
2007 6.21 당신의 신실한 친구 산비
致詰 치힐- 치는 극단까지 가는 것, 힐은 끝까지 깊이 생각하는 것.
즉 사물의 종극까지를 깊이 생각하여 파악하는 것을 말함.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다시 햇볕이 내리쪼이고 있습니다. 비가 그치면 해가 뜨는 것이고, 맑은 날이 오래가면 곧 비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달이 차면 기울고, 다 기울고 나면 다시 차오르듯이,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가 그러합니다.
인간사 삶의 원리도 마찬가지지요. 슬픈 일만 계속되는 법은 없으며, 기쁜 일만 계속되지도 않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두 가닥의 노끈이 되어 서로 얽혀 있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가 뜨면 햇볕을 쪼이는 것처럼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뿐입니다.
일체의 회의와 의심을 버리고 삶의 무상함을 깨닫게 되면 번뇌에서 벗어나 절대 고독을 즐길 수 있게 되겠지요. 먼저 致詰의 자세로 책을 읽고 사유하여 우리 마음에 끼인 먼지와 때를 벗겨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치힐 합시다.
2007 6.22 산비
“부석사에서는 이처럼 속세로부터 성역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위계가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느낌은 계단을 오르는 중간중간에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아래쪽으로 펼쳐지는 소백산맥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때 마지막으로 완성된다. 부석사의 계단을 실제로 밟고 오르면서 이와 같은 우리 고유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면 한국 전통 건축의 참 멋 한 가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사찰의 진입공간에 나타난 건축적 여정은 긴장감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지루하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으면서도 종교적 기대감을 극대화시켜주는 데, 사찰의 산문을 직접 걸어보며 목적지를 향하여 전개되는 여정을 느껴보는 것은 한국 전통 건축의 참맛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직접 부석사에 가서 찬찬히 거닐어봐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옛것에서 발견하는 가치들이 지금 서양이 난관에 봉착해서 돌파구로 찾는 새로운 사상들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전에 헬레나의 <오래된 미래>에서도 접했던 관점입니다. 그녀도 가장 오래된 문화들과 가장 현대적인 문화 사이에 놀라운 유사성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었지요.
임석재 님은 소수서원의 비대칭적 구성이 갖는 의미를 책에 자세히 써놓았습니다. 일곱 채의 건물이 이리저리 배치되어 있는데 직접 거닐어 보면 조금 모자란 듯한 엉성한 구성 속에서 내재적 질서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동양적 무위 사상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하며 서양의 카오스 이론과도 연결시킵니다.
엄격한 대칭을 바탕으로 한 정형적 질서를 최고의 건축적 가치로 추구했던 서양 고전 건축의 흐름은 이제 임의성 또는 카오스적 질서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가장 솔직한 현실 세계의 사실적 모습이며, 무질서를 개선하려는 기계론적 믿음은 오히려 가장 비현실적 발상으로 비난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동양적 가치관 속에 숨어 있는 대안들을 우리가 찾지 못하고 오히려 서양 사람들이 발견하여 자신들 것으로 만들어 놓은 가치를 우리가 나중에 가서 지금의 우리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또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만의 우수성이나 미학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 발견하고 판별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오롯이 체험하고, 치열하게 기록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겠지요.
2007 6.22 산비
“삶 속에서 이론적 문제를 찾아내 다시 삶에 되먹이는 일, 그래야 삶이 학문으로 인해 풍요로워질 터인데...” - 이기상 교수
배우고 익혀 그것을 삶에 되 먹여야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하는데 그 되먹이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실천에 옮기지 못합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에 배지를 않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를 막아서는 게 무엇일까요? 왜 배운 대로 행하기를 망설이는 것일까요?
마당과 모서리에 대한 한국 전통 건축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각론적인 건축 이야기를 끝내고 이제 보다 원론적인 주제로 들어왔습니다.
한국 전통 건축의 영원한 화두는 ‘자연’입니다. 제13장 ‘친자연과 낭만주의, 새소리 물소리 솔바람 소리,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의 일부가 되다.’ 길게 달린 제목의 길이가 주제의 비중을 말해줍니다.
“서양식 시각에서 보면 개심사는 거의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게으른 건축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건축에서는 이것도 엄연히 건축이었다. 아니 이것이 바로 건축이었다.”
제가 갖는 관심은 그것이 의도한 바였는지, 아니면 되는 대로 지어놓은 것을 가지고 꿈보다 해몽 식의 설명을 하고 있는지입니다. 반듯하게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진정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배제하고 일부러 남겨놓고, 비워두고 미가공하여 배치한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 갑니다. 그러나 설령 되는 대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조상들의 기본적 사상의 원류가 자연과의 조화에 있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거닐며 각 건물에 담긴 의미를 알고 그것에 어울리는 건물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2007 6.23 산비
“삶이든 사랑이든 스스로를 낮추고 침묵해야 더 깊고 아름다워진다. 안타깝지만 삶과 사랑의 엄연한 역설을 어쩌겠는가.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등 뒤에 있고 진정한 사랑은 놓아줘야 찾아온다.”
오늘 하루 3부 ‘건물의 감상법’을 읽는 것으로 임석재 님의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을 완독 하였습니다. 건물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미학적 관점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을 대표하는 개념은 ‘중첩과 관입’입니다. 이는 ‘불이사상’, 즉 사물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구별하려는 결정론적 시각에 반대하는 사상인 바, 이것이 내 외부 공간 그리고 이쪽 공간과 저쪽 공간 사이의 구별을 모호한 상태로 놔두는 한옥의 공간적 특징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차경과 장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부석사의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아침에 해가 떠오를 무렵, 안양루 밑을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면서 무량수전을 바라보면 부처님 얼굴처럼 노란색으로 밝게 빛나는 무량수전의 모습이 눈앞에 가득 펼쳐지면서 호흡이 멎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고 임석재 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을 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용헌의 사찰 기행>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우리 사찰과 옛 건축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록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내부적으로 고달프고 힘겨운 아픔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흙 속에서 영롱한 연꽃이 피어나듯, 보다 고고한 삶을 갈망하며, 눈을 높이 들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지난 2년간 우리는 너무너무 잘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힘내십시오.
2007 6.25 당신의 신실한 도반 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