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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Feb 20. 2019

책을 즐기는 9가지 방법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입니다. 세간에서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요즘 같은 한가한 겨울철이 또한 책을 읽기 맞춤한 때입니다. 마음을 비우시고 독서삼매에 빠져 이 춥고 긴 적막 고적한 겨울을 무사히 나시기 바랍니다.


책을 지겨워하시는 분들을 위해 저 나름대로 터득한 책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좋은 책 고르기. 물론 좋은 책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그래서 어떤 책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이렇습니다.


첫째, 맛이 있어야 합니다. 글을 읽는 맛이 있어야 해요. 재미하고는 조금 뉘앙스가 다릅니다. 물론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단순히 재미만 놓고 말하자면 유머집이나 만화책 이상이 없겠지만, 그런 단순 재미 말고 진하게 우러나는 글맛이 있어야 합니다. 쉽고 간결한 문체로 쓰인 책이 좋습니다. 글이 술술 읽혀야 합니다. 그러면서 마디마디에 의미심장한 문구가 있어 다시 한번 읽고 잠시 생각에 빠지게 하는 책이 좋습니다. 한 번 잡으면 끝이 궁금해져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배움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읽고도 얻는 바의 크기와 질량은 각자 다를 수 있겠습니다. 어떻든 뭔가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제가 책을 고르는 구체적인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선 신문에 실리는 북 섹션에 주목합니다. 책에 대한 서평이나 리뷰를 통해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가끔 신문에 실리는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자극이 되기도 하고, 유명 인사가 감명 깊게 읽었다고 추천하는 책을 목록에 올리기도 합니다. 혹은 어떤 책을 읽다가 그 책 속에 소개된 다른 책을 점찍기도 합니다. 때로는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필이 꽂혀 책을 사보게도 되지만, 이런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광고가 선정적이고 장황할수록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달 읽을 책들의 목록이 작성되면, 그 목록을 들고 서점 순례에 나섭니다.     


책이란 필히 자신이 직접 살펴봐야 합니다. 서평만 읽고 책을 샀다가는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을 들어 목차를 살펴본 다음, 서문을 포함한 처음 몇 장만 읽어보아도 읽을 만하겠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책을 두루룩 넘겨가며 군데군데 몇 구절씩을 살펴보면 필이 확 꽂히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 책을 가져간 목록에 동그라미로 표시해 둡니다. 구입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합니다. 훨씬 저렴하거든요.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주문한 책이 마침내 도착하여, 포장지를 뜯고 책을 내 손안에 들었을 때의 그 충만한 기쁨이란. 얼굴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고, 손끝엔 가벼운 흥분과 떨림이 전달되어 옵니다. 책은 이렇게 고르고 구입하는 단계부터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으면 이제 열심히 읽어야 하겠지요.    


시간의 족쇄로부터의 해방. 우선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틈새 시간은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거창하게 시간을 정해서 책을 읽으려 들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짬짬이 읽어야 합니다. 일과 중에 틈틈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게 말은 쉽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책을 읽는 호흡이 자꾸 끊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내공이 어느 정도 쌓이고, 숙달이 되면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짧은 막간을 이용해서 몇 줄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상당히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지만 하다 보면 됩니다.    


장소로부터의 해방. 책을 읽을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읽을 책이 손에 들려 있어야 합니다. 오고 가는 출퇴근길은 책과 친해지고, 삶의 농도를 더욱 진하게 만들 기회입니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저는 그래서 일부러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가용 운전을 피합니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게 될 때는 반드시 책을 읽습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귀하고 고마울 수 없습니다.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남들이 보면 조금 잘난 채 한다고 여기지 않을까,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데, 조금 창피한 데... 이런 생각들을 버려야 합니다. 당당해야 합니다.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전에는 외국인들이 해변이나 수영장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잘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습니다. ‘놀러 왔으면 놀아야지, 웬 책이람’ 그런데 이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저도 여름휴가를 떠나거나 여행을 갈 때는 반드시 책을 여장에 꾸려갑니다. 책은 어디를 가든지 필참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침대에 편하게 몸을 기댄 채 하는 독서는 삶에 평안한 안식을 가져다줍니다. 하루의 절묘한 마감이며, 멋진 삶의 행보입니다. 그런 멋 좀 부리며 삽시다.    


손으로 책 읽기. 책은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오감을 이용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에서는 향기가 납니다. 책을 손에 잡는 감촉이 포근합니다. 책에는 손때가 묻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책에 묻은 손때를 추억하며 지금을 회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저 그때 그랬지. 이 책을 읽을 때 무슨 일이 있었지. 어디를 여행 중이었는데...’ 등등. 밑줄을 그으라는 말입니다. 밑줄을 그으면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밑줄 그은 문장들이 현재의 나를 말해줍니다. 나중에 책을 다시 읽다 보면 왜 여기다 밑줄을 그었을까, 싶어 지는 어색하고 생소한 문장들이 있는가 하면, 왜 이렇게 중요한 곳에 밑줄을 긋지 않았을까 싶어 지는 문장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한 작업이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힘이 되어줍니다.

   

직접 체험하는 즐거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책을 쓴 저자와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책을 읽다 보면 그 책을 쓴 작가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과 동경을 품게 됩니다. 우연한 기회에라도 펜 사인회에서 직접 책에 사인을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메일을 보내거나, 그 작가가 여는 강연회 같은 곳에 찾아갈 수도 있겠습니다. 때로는 책에 나온 장소를 찾아가 보거나, 책 속에 소개된 인물을 직접 찾아가 만나보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김병종의 모노 레터에 소개된 방배동 ‘장미의 숲’이라는 레스토랑을 찾아가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책 속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나비와 전사>를 쓴 고미숙 님의 강연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궁금한 점을 물었습니다. 참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일전에는 조용헌의 <방외지사>에 소개된 화가 박시후 님을 찾아가 뵌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전라남도 나주에 ‘죽설헌’이라 이름한 자신의 집에서 유유자적 시서화를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한 번 방문해도 되겠는지를 묻는 편지를 띄우자 직접 전화를 해서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그가 30년 동안 직접 가꾼 ‘죽설헌’을 둘러보고, 사모님이 내주신 연꽃차를 마시며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컬렉션으로서의 가치. 책은 보물입니다. 보물은 두고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뿌듯해지지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고에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만큼 가슴 뿌듯해지는 일이 없습니다. 내가 이 많은 책들을 읽었다니... 그 순간만큼은 커다란 자만감에 빠져도 좋을 순간입니다. 누구에게 내보이기 위한 교만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품는 자긍심입니다.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에 깊이깊이 감추어둔 보석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는 절판된 책을 자신만이 소장하고 있는 기쁨은 큰 것입니다. 실제로 희귀본들은 웬만한 골동품 이상 가는 값어치를 갖기도 합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묵은 보따리 속에서 엄청남 비밀을 간직한 문서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책을 모아두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며, 내 삶의 가치를 빛내주는 보고입니다.    


한 번 읽은 책 다시 보기. 정말 희한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일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다시 보는 즐거움. 그때와는 또 다른 감회에 젖는 경험. 그것이야말로 책을 즐기는 참된 방법입니다. 제가 희한한 즐거움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렇습니다. 불과 읽은 지 1년도 안 된 <다빈치 코드>를 다시 한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생소한 내용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이런 내용이 이 책에 있었던가 싶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알츠하이머도 아니고. 정말 희한한 일 아닙니까?


책이란 게 참 묘합니다. 우리가 산에 가보면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 것처럼, 책도 다시 읽어보면 읽을 때마다 다른 감상을 갖게 됩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다섯 번도 더 통독했는데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20대, 30대에 읽었던 책을 40대에 읽어보면 또 다릅니다. 독서가 그대로 인생입니다.    


앎의 즐거움. 우리가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지식’의 획득입니다. 독서는 모르는 것을 배우고, 미처 의식하지 못하던 것을 깨닫고, 그리하여 삶 속의 진리와 의미를 하나하나 알아나가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삶을 바라보는 안목이 깊어지게 됩니다. 산다는 것의 의미가 진리를 찾아가는 나그네의 여정이라 할 때, 독서야말로 우리가 왜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밝혀줄 진리의 횃불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를 알고나면 둘이 궁금해집니다. 둘의 궁금증을 풀게 되면 이제 그것은 제곱수로 확장된 넷의 지식을, 그것은 다시 열여섯의 지식을 더해줍니다. 경이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배운 지식을 저기서 발견하는 즐거움, 저기에 응용하는 즐거움. 이런 것들이 우리를 책의 세계로 더욱 빨려 들게 합니다.    


글쓰기의 즐거움. 마지막으로 책을 읽고 난 다음, 읽은 감상을 글로 써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만 독후감 쓰기를 강요할 것이 아닙니다. 책을 읽고 난 다음 일기를 쓰듯이 메모를 남겨놓으면 그것이 훗날 소중한 기록이 되고 삶의 보물이 됩니다. 삶을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살아가게 해 주고,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게 합니다.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성실한 자세로 삶을 살아가게 해 줍니다.


우리 옛 선조들도 지독하게 책을 읽었습니다. 인생이 먹는 것과 읽는 것뿐인 것처럼 치열하게 독서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글을 남겼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독서삼매에 빠져보십시오. 삶의 번뇌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악마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권태’입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많은 악행이 심심해지는 걸 못 참는 인간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권태는 어쩌면 미리 느껴보는 상징적인 죽음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걸 감지하고도 가만히 있다면 그 삶은 죽음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죠. 사실 많이 권태로웠습니다. 예전에 정신없이 바쁠 때에는 그럴 틈이 없었지만, 어느 날부터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자 오히려 안절부절 고통스러웠습니다. 신문을 구석 광고 기사까지 섭렵하고,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고 헤매도 퇴근 시간은 멀기만 하였습니다. 정신적 공황으로 폐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를 권태의 지옥으로부터 구원한 것은 바로 책입니다. 예전에도 책을 읽기는 하였지만 그냥 질질 끌려가며 대충 시간이나 죽이는 용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서 삼매경의 즐거움을 득도한 지금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서고에 가득 꽂힌 책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황홀해집니다.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 있으니 권태로울 틈이 없습니다.  조금의 자투리 시간도 그저 흘려버릴 수가 없습니다. 매일매일 전투를 벌여 점령지를 늘려나가듯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캐치하고, 은유한 바를 터득하고, 때로 작가조차도 스쳐 지나간 것들을 직관으로 감지하고, 그 책을 쓴 작가의 인간적 면모를 알아가는 것, 그런 작업들이 책을 오롯이 즐기는 방법입니다. 독서. 참 재미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책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독서인의 길에 들어서 보시기 바랍니다.


  -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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