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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Feb 26. 2019

여행 생활자


새로운 하루의 시작입니다. 이스라 작가 아모스 오즈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사막을 산책하고, 일출을 보고 손뼉을 치고, 새들이 지저귈 때 ‘고마워’하고 속삭인다고 합니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좋은 책을 읽을 때 삶의 매 순간 인생에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삽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책을 읽읍시다. 그리하여 살아있음이 축복임을 감사합시다.    


희망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거나 간절히 원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상처에 새살이 나오듯, 죽은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 희망은 절로 생기는 겁니다.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할 때, 가만히 마음속 깊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한 마리 작은 새가 속삭입니다. “괜찮을 거야, 이게 끝이 아닐 거야, 넌 해낼 수 있어”    


판도라의 상자에 맨 마지막에 남아있던 한 가지도 ‘희망’이었다고 하죠.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존재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캄캄하게 흘러가는 그 모진 시간 속에서도 생은 매 순간 우리를 생의 정원으로 이끕니다. 그 고요한 생의 격려를 느꼈기에 우리는 그 위기의 순간에서도 간절한 소망을 염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집시다.  

  

2007 7.3     산비     



유성용 님의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여행생활자>를 읽었습니다. 일생을 여행으로 늙어버린 사람. 여행이 그를 굴리고 다녀서, 그는 여행생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생활에 찌든 자들은 산정으로 올라야 하고, 죽음에 찌든 자들은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책이 정말 예쁩니다. 예쁜 사진들과 어우러진 보석처럼 빛나는 글들, 모조지처럼 거친 질감이 나게 처리된 지면에 수 놓인 듯 써 내려간 아름다운 글들을 읽으며 티벳과 인도와 라다크에 다한 동경을 다시 품게 됩니다. 나도 언젠가 반드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감과 함께.    


“미칠 것 같으나 사랑은 결코 치명적이지 않으니, 다만 어느 순간에도 부디 그대가 그대이기를 포기하지 마라. / 세상에 라사는 이제 없다 해도 아무래도 라사 가는 길, 그 여정은 여전히 남아 있을 터였다. / 나조차 알 수 없는 내 마음들이 내 속에서 범람하는 느낌을 받았다. / 여행자들은 생활에 지쳐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여행이란 삶을 등지고 죽음의 냄새를 맡으러 가는 머나먼 길이다. / 피하거나 떠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결국 진지하게 점점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막연함이 가슴을 시큰하게 한다. / 사는 게 막막할 때가 있다. 아니 늘 막막하다. 다만 그걸 견딜 수 있을 때와,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유성용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왜 나에게 나타나 내 생활에 개입하려 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을 읽으며 마치 내 진정성을 탓하며 내게 비수를 들이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열정은 언젠가 식는다. 열정이 식는 것을 어떻게 탓하겠는가. 세상에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열정과 진정성을 주장하고 나서지만 그것들이 식을 때에서야 그 속내가 드러나는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안팎을 극진히 살피지 못하고 다만 제 사랑의 열정에 갇힌 사랑이었다면 식을 때 분명 비릿한 물컵 비린내 같은 슬픔이 있으리. 그대의 사랑을 주장하지 마라. 뜨겁게 고백하지도 말고 선언하지도 마라. 경박한 삼류 수필집에서나 그대 이유로 불타오르는 사랑이 박수받으리. 아무래도 이 세속은 그대의 열정만으로는 함부로 아름다울 수 없는 것. 세상에는 가슴 아프게 적나라한 진실들이 몇 있다. 그중 하나는 열정과 안정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 꿈을 깨라. 그대의 열정이 식는 자리도 저리 비릿한가?”     

  

정말 그럴까요? 열정은 언젠가 식게 되는 것일까요? 죽는 순간까지 지속될 열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나, 책에 대한 사모 같은 것들도 결국 시들게 될까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프란체스카가 죽는 순간까지 간직했던 로버트 킨케이드는 단지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일까요?   

 

2007 7.3     산비     



예전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타이틀로 KBS 인간극장에 소개되었던 박범준, 장길연 부부가 제주도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입니다. 무주 산골에서 생활하던 그들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너무나 많은 손님들 때문에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중 제주에서 답을 발견했답니다.    


자신들의 집을 ‘바람도’라 이름 붙이고, ‘바람 도서관’과 ‘풍운연’이라는 찻집, 그리고 ‘바람 스테이’라는 펜션을 운영하며 삽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꿈꾸는지 엿볼 수가 있습니다.     


유성용 님의 책 <여행생활자>를 계속 읽었습니다. 여행이 삶이고 삶을 여행인 듯 사는 삶이 여행생활자일 것입니다.   

 

자주 되뇌고, 암송하고, 잊지 않는 것이 기원의 기술이라고 합니다. 무언가를 기원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기원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극진한 기원일수록 오래도록 암송하고 되뇌어도 그 속내를 읽어내기가 힘이 든다고 하네요. 마음의 깊은 층위에 기원을 위치시키고 스스로도 자신의 기원을 모른척하면서 한시도 잊지 않는 것이 두 번째 기원의 기술이라고 합니다.    


“평화와 안정은 여행자의 꿈이지만, 어찌 보면 처음부터 여행과는 함께 설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정을 뿌리치고 떠도는 것이 여행의 근간이고.../ 여행은 모순이다. 자유 속에서 생활을 꿈꾸는 아둔한 우여곡절이다. 여행의 길은 그저 멀어서 먼 길이 아니고 길을 알면서도 스스로 나아가서 길을 잃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먼 길이다. / 사람은 그들이 꾸는 꿈이 아름다워야 아름답다. / 나는 힘들지 않았다. 왜 견뎌야 하는지를 몰라 그렇지 나는 무엇이든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쩜 사진을 이렇게 멋지게 찍을 수 있는지 감탄스럽습니다. 저도 여행 가기 전에 사진 찍는 법에 대해서 전문가에게 좀 배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파란 하늘, 흰 구름, 히말라야의 설산, 황량한 들판, 사람의 표정. 예술적 경지에 오른 사진들입니다. 프로네 님도 보시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2007 7.4     산비   


 

“‘초속 5센티미터’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의미하는데, 감독은 그 밖에도 일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속도들을 대입해가며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맞닿는 지점에 관해 이야기한다. 티끌 하나 묻어나지 않을 것처럼 순수한 사랑, 헤어짐과 애절한 그리움. 전작들을 관통해온 테마는 <초속 5센티미터>에서도 변하지 않았고, 감독 특유의 소녀적 감수성 역시 여전하다. 텅 빈 교실의 책상 위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형광등 불빛, 차창에 기댄 이의 어깨에 녹아드는 석양 등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아련한 감성을 새겨 넣는 섬세한 연출은 추억과 순수의 세계로 관객을 흡입한다.”    


스쳐 지나가는 듯한 영상을 잠깐 접했을 뿐인데, 가슴에 전해오는 영상미가 강렬했던 기억이 납니다. 잠시 잊고 지내다가 <여행생활자>에 실린 곱고 예쁜 사진들을 보고 다시 생각해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을 네팔과 티벳과 인도와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을 돌아다니며 여행한 기록과 사진들입니다. 가다가 머무르고 머무르다가 훌쩍 떠나고... 아! 나는 언제쯤이나 그렇게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수 있게 될까요?  


유럽을 한 달 가까이 여행하실 프로네 님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떠나기로 결심한 그 용기가 가상합니다. 하지만 지금 떠나지 않으면 다시 떠날 결심을 하기까지 또 그만큼의 오랜 시간이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는 님이시기에 다만 격려의 손을 흔들어 줄 뿐입니다. 가서 많은 것들을 보고 가슴에 담아 오시기 바랍니다.     


유성용 님도 여행 중 북소리를 듣습니다.    


“때때로 눈을 감으면 격렬한 비트의 그 밑바닥에서 뜻밖에도 아주 느리고 고요한 선율을 듣곤 했다. 어둠 속에서 그 미약한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들려오던 북소리는 점점 더 아득해지는 무엇이 되고, 나는 광활한 황야에서 북소리와는 상관없이 천천히 흔들리는 나뭇잎이나 혹은 나비의 춤을 바라보게 되는 거다. 시간이 자주 섬세해지고 머릿속이 환해진다. 눈을 뜨면 다시 격렬한 북소리가 터지고 있고 사람들의 땀 냄새가 난다.”    


프로네 님도 먼 북소리의 표적을 따라 곧 멀리 여행을 떠나시겠군요. 절대 아프지 말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것만 약속하고 다녀오십시오.    


2007 7.5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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