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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Feb 28. 2019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3

   

분주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치열하게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했고,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18세기 말과 19세기의 미술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전에 공부했던 터너, 들라쿠르아 같은 화가들과 직접 감상한 원화들이 게재되어 있어 더욱 관심과 반가움을 가지고 책을 읽었습니다. 19세기 들어 예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풍경화가 부각되는 이유는 화가들이 주제의 선택에 대한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을 원했으며 그리하여 세계를 본 그대로 표현하려는 ‘사실주의’가 대두되었습니다. 사물은 반드시 이렇게 보아야 한다는 규칙을 탈피했으며, 본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에 집착해서 그림을 판단하는 것을 배격했습니다. 그리하여 자연을 ‘바로 그 현장’에서 본 그대로 그리려는 모네 같은 일련의 인상주의파들이 활약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신문에 실린 비평가들의 평을 읽어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인상주의자’라는 말도 ‘고딕’이나 ‘바로크’처럼 조롱이 섞인 경멸 조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붓으로 암시만 주듯이 터치된 그림이지만 몇 걸음만 물러나서 보면 이러한 혼란스러운 색상들이 갑자기 우리의 눈앞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고 생기를 띠게 되는 기적 같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고 합니다.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심미안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그림의 제목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쿠르베 씨’ ‘낙선한 화가의 분노: 게다가 내 그림을 낙선시켰어! 무식한 바보들 같으니라고!’ 등등.    


2007 7.16  하루 종일 비 내린 월요일에  산비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책이 던진 화두를 풀기 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에 변화가 생기듯이, 여행을 하기 전의 나와 하고 난 후의 나도 달라진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게 됩니다. 여행이 주는 감동과 체험적 지식은 내가 일부러 외우려 하지 않아도 그대로 골수에 박히는 산지식이 됩니다.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남이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19세기 후반을 거쳐 20세기로 넘어오면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화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세잔, 고흐, 고갱, 칸딘스키, 마티스, 피카소 같은 이들입니다.    


“반 고흐의 화가로서의 사명감, 그의 투쟁과 승리, 절망적인 고독, 타인과 사귀고자 했던 간절한 열망”    


세잔과 고흐는 ‘자연의 모방’이라는 그림의 목적을 의도적으로 버림으로써 미술사에 있어서 중요한 첫 발을 내디뎠다고 평가받습니다. 이것은 현대 미술 운동의 이념적 바탕이 되었으며, 오늘날의 Cubism, Expressionism, Primitivism 사조를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소위 본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 또는 믿음에 의해 형상이 잡히는 것입니다. 즉 대상에 대한 믿음이 다르면 같은 것을 보고도 달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지요. 창문을 열고 밖을 볼 때 수천 가지 다른 방식으로 경치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장면이 본 대로 그린다고 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말하는 진정한 감각적 인상인가? 곰브리치는 묻고 있습니다.

   

여행 나가시기 전에 이윤기 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이랑, 임석재 님의 건축사 책 3권, 그리고 프로네 님 소장하고 계신 책 중 권할 만한 책 있으시면 모두 빌려주고 가시기 바랍니다.  <관자>는 같이 읽어나가야 하므로 여행 다녀오신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비평가들의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를 짜증 나게 할지라도 작품 자체는 항상 우리를 납득시켜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언제나 최선의 방법은 원화를 직접 가서 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직접 가서 좋은 그림 많이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2007 7.18     산비   


  

오늘은 20세기의 미술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그들은 과거처럼 ‘주제나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 무엇을 추구했습니다. 곰브리치는 그들이 사물을 창조하고자 했다고 해석합니다. 즉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했다는 것이죠. 돌을 조금씩 깨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아갈 길을 돌을 통해 느끼고 그 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초현실주의자 마그리트의 그림들이 인상적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르네 마그리트’ 전이 열린 적이 있는데, 가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역사가의 할 일이고 거기에 대해 논평을 하는 것은 비평가의 몫이라고 합니다. 결국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미술(Art)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뜻을 지닌 무엇이었습니다. 미술가들은 계속해서 탄생할 것이지만, 우리가 지금 소위 ‘Art’라고 관념 짓는 것들은 후세의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전승하는 가에 따라 사라져 갈 수도 있고, 살아남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2007 7.19      산비     



“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다른 이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 노발리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오르한 파묵  

  

“닿을 수 없는, 그러니 완성할 수도 없는, 인간 영혼의 가장 먼 곳을 꿈꾸며 떠날 때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 정끝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완독 하였습니다. 다른 그 어떤 책을 끝냈을 때보다도 더 깊은 감격이 있습니다. 마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난 뒤의 기쁨이라고 할까. 이거야말로 우리가 늘 부르짖던 ‘인식의 지평’이 넓혀지는 체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을 통해 인류 역사의 한 면모를 통찰한 듯한 기분입니다. 물론 그 내용을 세세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제 어느 미술 전시회에 가더라도 낯설지 않게 그림을 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사이사이에 잠깐씩 읽었던 책, <아이거 북벽>도 오늘 끝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전, 산악인이 뽑은 최고의 산악도서라는 책입니다. 1982년, 20년도 전에 알프스의 아이거 북벽에 올랐던 정광식 님의 글입니다. 직업이 산이라는 사람들, 산에서 죽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산’이라는 것이 도대체 인간에게 있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일정표를 보니 스위스를 거치는 여정이 있군요. 눈 덮인 알프스의 영봉들을 보실 기회가 있겠네요. 그 느낌이 어떠한지 다녀오셔서 꼭 말씀해주세요. 좋은 여행하시기 바랍니다.     


2007 7.20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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