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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비 Mar 08. 2019

지중해 철학 기행 2

  

“젊기는 쉽다, 처음엔. 늙기는 쉽지 않다. 세월이 걸린다. 젊음은 주어진다. 늙음은 이루어진다.”

“나이 들어도 쉬이 없어지지 않을 자기 세계, 세평에 쉬이 무너지지 않을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젊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잘 늙음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 ‘화양연화’도 한때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렇듯 발버둥 치고 애쓰는 것도 다 잘 늙기 위함입니다.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들려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유적의 실물을 오감으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배운, 알고 있는 역사는 사실 대부분이 윤색된 것이다. 진짜 정통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 우리가 모르는 역사에 더욱 많이 존재한다. 유적에는 이미 허무 속으로 사라진 모든 것이 남아 있다. 유적은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를 만나게 하는 입구인 것이다.”    


건축은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총괄한다고 합니다. 커다란 신전, 거대한 성벽을 보며 느끼는 아찔한 감회는 작은 전시실을 가득 메운 조각들을 감상하는 소감을 압도한다는 것입니다. 유적을 즐기는 데는 지식이 필요하지 않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잠자코 잠시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합니다. 그 앞에서 숨을 고르고 정지한 순간, 유적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줄 것이므로.    


다치바나 다카시의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플라톤은 철학에 초월적 차원의 형이상학적인 새로운 방향, 곧 영원성을 부여했다. / 수업에서 배움이 일어나고, 배움은 앎의 획득이다. / 배움은 수행 능력과 올바름을 통일시키는 영혼의 상태에 이르는 길이다. / 교사가 대가를 받는 것은 자기 제자들의 혼 안에서 훌륭함이라는 이름의 제품을 직접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앎의 토대와 통찰의 토대를 매개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 플라톤의 국가론, 이데아, 소피스테스 등에 대해서 공부하였습니다. 참된 앎(지혜)이란 단순하게 그냥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니라, 그것이 왜 그런지 그것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통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참된 앎을 수업을 통해 교육하는 것을 ‘파이데이아’라고 합니다.    

 

2007 9.19     산비        



그리스어 ‘프로네시스(phronesis)’는 실천적 지식을 뜻합니다. ‘실천지’는 연습하고 습관화하고 경험하지 않고서는 획득할 수 없다고 합니다. 늘 경험하고 실천하려 애쓰는 프로네 님에게 딱 어울리는 닉네임입니다.


“박학지博學之 심문지審問之  신사지愼思之 명변지明辯之 독행지篤行之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깊이 생각하고, 분명히 판단하고, 독실히 행하라”    


널리 배우지 않으면 자신의 조그만 식견이 대단한 줄 알게 되고, 물을 줄 모르면 겉껍데기만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깊이 생각하고 분명히 판단해서 독실히 행해야 하겠습니다.  


/ 인간은 ‘삶을 영위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영위되는 삶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오스 bios’라고 부른다. 비오스, 즉 삶의 영위는 일정한 습관에 토대를 둔다. 습관에 의해 익숙하게 된 상태를 가리켜 ‘에토스(ethos, 성품)’라고 부른다. 인간에게 적합한 에토스를 규정하는 일이 ‘윤리학 Ethik’의 과제이다. 윤리학이란 도덕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삶을 위한 규범들을 확립하고 발전시키는 철학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윤리학을 대강 요약해 보았습니다. 학문의 기원에서부터 차근차근 철학사적 흐름을 짚어나가는 책의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습니다.    


처음에 학문과 철학은 하나였습니다. 학자는 곧 철학자였습니다. 개별 학문이 철학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기껏해야 200년이 채 넘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파스칼, 뉴턴 같은 위대한 수학자나 물리학자들도 모두 철학자였다고 합니다. 저도 한 때 철학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공부해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클라우스 헬트의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목마름을 해갈하는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      


밤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어두움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갈마드는 이 시간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정리의 시간입니다. 들판의 농부가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좋은 밤 되십시오.    


2007 9.21     산비     


   

“우정은 결코 어떤 물건이나 다른 어떤 것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그가 이런 친구를 갖기 전에는 바로 지금의 ‘그 자신’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세상에서 연극을 해야만 했던 연극의 한 ‘역’을 맡고 있었을 뿐이다. 친구 역시 그와 함께 같은 체험을 한다. 둘이는 ‘함께’ ‘우리’가 된다. 이것은 어떤 가치를 말해주고 있다. 즉 하나는 타인에게 주는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받는 것이다. 그의 존재는 이제부터 함께 존재하는 ‘공동 존재’인 것이다. 둘이는 존재의 일치를 형성한다. 한 사람의 존재는 타인의 존재 요소가 되며 또 그와 반대로 한편은 다른 한 편의 존재 요소가 되는 것이다.”    


친구 사이의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지 그 본질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친구를 갖기 전에는 바로 지금의 ’그 자신‘이 아니었다.’는 말이 충격적입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나는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한 역을 맡아 그저 연극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당신을 만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멋지게 살아갈 꿈을 가진 ‘지금의 나’가 되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이제 ‘공동 존재’입니다. 서로의 존재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지중해 철학 기행>을 계속 읽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철학사의 흐름에 따라 각론적인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내용과 설명의 깊이가 적당합니다.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고, 천박하지도 않고, 일정 소양을 갖춘 독자들이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입니다. 그동안 막연하게 감만 잡고 있던 철학적 용어와 개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답답한 가슴이 명쾌해지는 기쁨을 얻습니다. 로고스, 이데아, 사유, 의지, 우연, 형상, 질료, 본질, 아레테, 아우르타케이아, 양심, 아파테이아, 파토스 등등.    


‘인간의 행복은 무엇인가’ 세 가지 행복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정을 지향하는 행복관입니다. 탁월한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 느끼는 행복입니다. 둘째는 쾌락주의적 행복관입니다. 기쁨을 가져다주고 나를 만족시키는 일들을 즐길 때 느끼는 행복감입니다. 셋째가 이론 지향적 행복관입니다. 이론을 세우고 어떤 법칙성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냄으로써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행복입니다. 프로네 님은 어느 쪽입니까?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궁극적 목표, 인간의 모든 행동이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삶이 지속적으로 행복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행복한 상태란 만족해서 즐거운 상태입니다. 즐거운 느낌이 수반되지 않는 행복은 행복이 아닙니다. 삶의 마지막에 죽음이 찾아왔을 때 삶이 성공했고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현자’입니다. 우리는 현자가 되어야 합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여 뭉글 피어오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감정을 정화시키고 숙연하게 합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누군가가 그리워집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2007 9.28    비 오는 어느 가을밤,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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