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가로지르는 도발
설국열차에서 혁명은 맨 뒤 칸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은 가장 결핍된 자리다.
춥고, 배고프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공간.
그러나 바로 그 결핍이 서로를 알아보게 만든다.
꼬리칸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유를 꿈꾸지 않았다.
그들이 연대한 이유는 정의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앞칸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이 상태가 영원히 반복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질서를 전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질서를 가로지른다.
문을 하나씩 부수며 이동하는 과정은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행위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이 보편적 논리가 아님을 증명하는
도발에 가깝다.
그들의 연대는 이상이 아니다.
각자의 결핍을 맞대어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판단에의 합의이다.
그렇기에 이 결탁은 불온했다.
연대란
질서 안에서의 화해가 아니라
질서를 통과해 버리는 집단적 이동이다.
그러나 모든 문은
통과의 장치인 동시에
체류의 장치이기도 하다.
길가메시가 삼나무로 세운 우루크의 문은
바깥으로 향한 통로일까,
아니면 이제부터 머물러야 할 새로운 내부의 경계일까?
연대는 성공하는 순간,
가장 조심스러운 질문을 요구한다.
우루크로 돌아온 길가메시에게
그 문은 왕국의 안전한 성벽이었을까,
광야로의 통로였을까?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탄 열차는
설국에 멈추어야 했을까, 레일 위를 계속 달려야 했을까?
>> 결핍의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