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연대가 남긴 흔적

실존적 연대의 발견

by 떨뇌지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훔바바를 처단하고,

신의 성역에서 챙긴 삼나무로

우루크의 문을 세웠다.


신의 전능함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보면

그들의 연대는 분명 어리석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의 시선에서 보면,

그들이 가장 위대한 것을 얻은 순간은

돌아와 성벽 앞에 섰던 바로 그 시간이다.


유한한 생명이라는 절대적 시련 속에서,

우루크의 번영을 위해 서로의 결핍을 마주하고

함께 견뎌냈다는 사실 그 자체 말이다.


길가메시가 우루크의 성벽 위에서

백성을 바라보며 느낀 연민은

죽음이라는 필연적 소멸 앞에 던져진

허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한함을 함께 견뎌낼 서로를 목격한,

실존적 연대의 발견이었다.


결핍은 더 이상 채워야 할 구멍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시스템의 부품이 아니라,

서로의 온기가 필요한 주체임을 증명하는

가장 인간다운 흔적이다.


이제 우루크의 문은

그 결핍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

시스템이 정한 운명을 가로지르는

주체적 연대가 향할 광야의 입구가 된 것이다.




길가메시를 영웅으로 만든 주체성에 대한 갈망은

<<결핍의 재구성>>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__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오스트리아 출신 신경과 전문의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통한 치유, "로고 테라피"를 창시하였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4. 불온한 결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