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지 않는 미숙함에 대하여
우리는 결핍이 없는 삶을 꿈꾼다.
아마도 결핍을 용납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아도 모든 것이 주어지는 곳,
모든 게 완벽한 신의 설계인 에덴에도
단 한 가지, 신이 만들어 놓은 결핍이 있다.
바로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선과 악을 알게 되는 열매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 애쓸 필요도,
무언가를 상실할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곳에서
정지된 시간을 살던 아담과 하와는
신에게 "왜"를 묻는 대신
주체적 도발을 선택한다.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는 단순한 타락이 아니라
스스로 결핍된 존재임을 눈뜨고,
피동적 삶을 끝내는 주체성의 발현이다.
이에 신은 명령이 아닌 질문을 던졌으나,
과일을 한 입 베어 무는 행위만으로는
삶의 주체가 되기 부족했다.
그 길로 둘은 고된 삶 속에서
스스로 사유하도록 내버려졌다.
아담과 하와는 인간에게 고통받아야 마땅한
원죄가 있음을 설명하는 것일까?
나의 오늘 하루도 힘겨운 것이
과연 씻지 못할 그들의 원죄 때문일까?
오늘도 내일도 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선과 악을 알기 때문이 아니다.
"왜"라고 묻지 않는 나를 향한
사유의 채찍질 때문이다.
원죄는 '하지 말라는 짓을 한 것'이 아니라,
질문하지 않고 행위만 앞세운,
나의 선택을 변명하는 미숙함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삶의 피로와 고통은
아담과 하와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에 안주하려는 나의 피동성과,
끊임없이 '왜'라고 묻고 나아가려는
나의 주체성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파찰음이다.
아담과 하와가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원죄가 아니라,
바로 질문할 권리이다.
낙원을 탈출해 광야의 파찰음을 선택한 인간들의 위대한 오답 노트는 <에덴의 피동자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