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무 한입
눈이 내리고 나면 오히려 추위가 덜하다고 했다. 눈구름이 걷히고, 얼어붙은 땅 위에 볕이 스며들면 봄이 온 듯 포근해졌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아직 발자국이 나지 않은 눈길을 밟으며 집 뒤 야산을 올랐다. 소리마저 눈 속에 묻힌 듯 사방이 더욱 고요했다. 뒷짐을 쥐고 앞장 서가는 아빠를 따라 십 분 남짓 오르니 놀란 장끼가 울며 날아오르는 소리가 산자락에 퍼졌다.
중턱 아래 소나무밭을 지나면, 그 아래가 우리 밭이었다. 위쪽은 아랫집 소샌1) 할아버지의 밭, 아래쪽은 옆 동네 누구네 밭이라고 했다.
나는 아빠가 무슨 볼 일이 있나 보다 하고 따라와, 막가지 하나를 들고 두더지 구멍을 찾아내 쑤시고 있었다.
햇볕에 반짝이는 하얀 이랑사이로 김장철에 뽑고 남겨둔 동배추가 잎을 활짝 열고 있었고, 눈을 맞은 무도 봉긋 솟아 있었다.
밭으로 내려가신 아빠는, 눈 얼음이 붙은 무청을 두 손으로 쥐고 이리저리 흔들어 땅속에서 뽑아내셨다. 어른 손바닥 만한 토종무 2)는 쪼글쪼글한 모양새였다.
그러고는 묻은 흙을 맨손으로 대충 털어내고, 이빨로 돌돌 돌려가며 껍질을 깎아냈다. 초록빛 껍질과 입안에 들어온 흙 들을 여러 번 뱉어내시면서.
칼도 없이 무를 깎는 모습에, 아빠는 못 하는 게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금세 하얀 무 살이 나오자, 한 입 먹어보시더니 윗부분이 달다며 내게 건넸다.
받아 든 무 한 입은 배처럼 시원하고 단 물이 입안 가득 퍼졌다.
아빠는 밭두렁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무 하나를 다 먹자 내려가자고 하셨다.
며칠 뒤, 나는 남동생을 데리고 다시 그 밭에 갔다. 눈부신 하얀 들판 한가운데서, 아빠가 내게 해주신 그대로 동생에게 해 주었다.
살포시 내밀어 봅니다.
매기의추억
1)'-샌'은 서남방언, 특히 전남의 동부 지역어에서 남성에 대한 호칭으로 비교적 활발하게 사용되어 왔으며, 현재도 70대 이상의 노년층 세대에서 그 잔영이 남아 있는 호칭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