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뿔도 아닌 애
동지를 지나면 어째 겨울밤은 더욱 길어지는 것 같다. 유난히 하얀 밤이나 칠흑 같은 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솥단지 꽉 닫았제?"
"예. 장날 나갔다 옴서 약이나 사 갖고 오시오"
긴 겨울밤, 시골 기와집은 불을 끄면 그때부터 우당탕 소리가 시작됐다.
소등과 함께 시작된 쿵쾅거리는 소리.
잠 준비를 하면서 솥단지 뚜껑이 잘 닫혔는지 확인하고 비눗갑도 꽉 닫아 놨더니, 더 난리였다.
고양이는 없고, 달이나 보고 짖는 복실이만 있었으니 세상 살판난 것은 쥐들이었다.
이것들은 사람을 우습게 본 듯 흙벽 사이를 갉아 길을 트고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한아부지는 캄캄한 새벽, 구들장이 식으면 장작 몇 개를 더 넣으려고 나갔다 오셨다.
잠결에 들리는 대화소리는 바깥부엌을 난장판을 내놓은 쥐들의 설거지를 하고 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날이 밝자, 마루 끝에 있는 곡식창고로 가셨다.
자물쇠를 따고 직접 만드신 철판문으로 들어가면 곡식가마니, 내 키만 한 장독대, 농기구들이 있었다.
그날 아침은 곡식 포대의 귀퉁이가 물어 뜯겨 쌀겨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한숨을 내쉬시며 빗자루질을 하셨다.
그러면서 혹시 물 수도 있느니 조심하라고 이르셨다. 나는 쥐는 보지 못했지만, 그 존재를 냄새로 알 수 있었다. 찌리하고 콤콤한 냄새. 그 주인공이 누군지 너무도 확실했다.
돌아온 장날에 한아부지는 쥐 끈끈이를 사 와 천장에도 놓고, 곡식창고에도 놓으셨다.
일명 '쥐 끈끈이'는 끈적한 약이 발라져, 한번 닿으면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종이였다.
나는 또 철없이 그 모든 것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겨울낮
기왓골의 고드름이 녹은 물방울들이 흙바닥에 일렬로 자국을 남겼다. 나는 떨어지는 한 방울을 입으로 받아먹어보기도 하고, 고드름을 끊어서 칼싸움 연습도 했다. 쥐뿔도 아닌 게.
하루는 한아부지가 빗자루를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
나는 심부름에 신이 나서 "예" 하고 곡식창고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몇 발자국을 디딘 순간, 발에 무언가 달라붙는 느낌.
노란 끈끈이가 붙은 종이를 밟아버린 것이었다.
소중한 내 운동화 바닥은 끈끈이가 붙어버렸고, 혼날 것이 걱정되어 눈물이 먼저 났다. 그즈음 오줌을 늦게 가려 이불빨래로 할머니께 주눅이 들어있던 차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 서 있는데 한아부지가 오셨다.
그리고는 나쁜 쥐를 탓하며 내 신발과 손에 묻은 끈끈이를 떼어 주셨다. 할머니에게도 나를 대신해 잘 말씀해 주셨다.
지금도 오공본드를 볼 때면, 그 노란 끈끈이의 감촉이 떠오른다. 그날 한아부지의 따뜻한 어루만짐이 없었다면, 그 시골의 겨울은 얼마나 더 길고 추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