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둑 잡으러 경찰도 왔다.
돌자반무침
짭조름한 바다의 단맛, 고소한 참기름 향까지. 한 접시만 있어도 밥 한 공기가 사라지는 마법의 반찬.
새하얀 쌀밥 한 수저 위에 조그맣게 자리한 까만 자태는 눈 덮인 논두렁에 내려앉은 두루미처럼 눈시울이 정겹다.
한 젓갈 올려 입에 넣을땐 씹히는 소리도 내지 않는 양반을 닮은 절제미.
전라도 반찬이 기본적으로 간이 센 편이지만, 김무침만큼은 강한 양념이 없이도 은은한 바다의 맛과 김 본연의 맛이 밥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보들한 누룽지 위에 올라갔을 때도 구수한 맛을 헤치지 않고, 기운 없을 때 먹는 죽에도 목에 상처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 주는 고마운 반찬이다. 그야말로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밥상에 명품조연이라 하겠다.
'자반'은 좌반(佐飯)이 변한 말로 '밥을 돕는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돌자반 무침을 하려면 김이 중요하다. 시판되는 돌김은 식감을 좋게 하기 위해 파래가 섞여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파래 자반이고, 엄밀히 따지면 돌김과 김만 100% 들어 있는 게 돌자반이다.
어릴 때 할머니는 파래가 섞여 있는 놈이 더 싸도 김만 들어있는 것으로 사야 된다고 하셨다. 요즘은 순수한 돌자반을 찾기가 어렵지만, 어차피 김자반은 어떻게 해도 나는 다 맛있다.
돌자반무침은 애간장, 고춧가루, 다진 파, 맛술을 넣고 조물조물하다가 참기름과 깨를 뿌려서 내놓으면 완성이다. 불도 쓰지 않고, 설거지할 양념그릇도 하나뿐이다.
그래서 추억의 돌자반 무침은 손쉬운 반찬이라고 생각했다. 궁중요리를 제외한다면 한식반찬은 그런대로 손맛을 낸다고 자부하고 살아왔는데, 이 집 김자반에게 졌다. 이 집 김자반무침을 따라 해 보려고 김자반을 한 봉지 다 뜯었다. 이러다
가 집에서 김 공장 하나 곧 차릴지도 모르겠다
오늘 또 장어구이 정식을 먹으러 가서 사장님께 상황 얘기를 하니, 말수 없는 사장님이 웃으시며 그냥 가신다.
식사를 다 마칠 때쯤 내 뒤로 오시더니, 물엿을 조금 넣고 물은 절대 넣지 말고 빡빡. 조물조물 무쳐보라는 비법을 알려 주셨다. 작은 목소리로 더 다가와선, 그래도 안되면 콜라를 조금 넣으라고. 그러면 안 풀어진다고. 풀어지면 안 되는 거라고.
됐습니다. 이제 됐어요.
나는 돌자반 사러 갑니다.
양만장을 직접 운영하며 '항생제를 먹이지 않는다'는 빛바랜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곳.
광주와 담양의 경계선에 자리한 이곳엔 밥도둑이 많아서인지 점심시간이면 경찰차가 자주 보인다.
장어구이와 돌자반을 밥도둑 현행범으로 잡으러 오시는 것 같다. 담양에 내려오신다면, 전라도 반찬과 장어구이 맛 좀 보고 올라가시길. 장어의 미끈거림이 부담스러웠던 나를 장어의 세계로 전도해 버린 집.
돌자반무침 소문 듣고 왔다면 한 접시 더 내어 주시라고 사장님과 합의를 봐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