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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을까

지금의 마음은?

by 이정연


어떤 작가님께서 사랑에 대한 내 매거진 글들을 연달아 읽으셨다. 내 구독자가 아니시기에 그냥 부담 없이 그분 얘기를 시작으로 글을 쓴다. 오늘따라 손에는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고, 브런치 알람이 끊임없이 울렸다. 그 알람을 보고서, 나도 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때는 자신에 차서 썼던 글들이, 이제와 보니 서툰 이야기 투성이라서 소름이 돋았다.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은 나의 콤플렉스였다. 모태 솔로였던 건 나의 오랜 부끄러움 중 하나였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나는 사랑에 대해 글을 쓰며 사랑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려 하였다. 글로 옮기고 보니, 나도 영 사랑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구나 자신에 찬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알았다. 지나간 이별은 이미 정리된 마음이었다는 것을. 일부러 더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며 혼자 서기 위해 노력한 나의 계절들이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 나이에 남들 같은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 지난 연애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사랑은 정말로 사고 같은 것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몸소 알았다. 그는 갑자기 내 차선에 끼어들었다.

그에 대해 쓰지 않을 수 없어서 나는 갑자기 새로운 사랑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이별에서 여섯 번의 계절이 지나고서야 시작된 일이지만, 내가 발행한 두 글의 시간차는 별로 나지 않았다. 얼마나 가벼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래 마음에 남았던 그 일이 오늘 고개를 들었다.


지나간 일은, 그토록 선명하게 남아있던 그 일은 누군가의 말과는 달리 이제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남들처럼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는 콤플렉스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글로 썼던 것처럼 그렇게 첫사랑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냥 너무도 조급해서 연애라는 걸 시작해야 했었던, 그런 시기였다. 연애 한 번 못해보고 내 인생이 끝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때는 그게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다.

남들은 몇 번의 농도 짙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도 남을 나이에 '난 사랑을 아직 몰라~♪'라고 어린 신부의 문근영처럼 노래나 하고 있을 순 없었거든. 그래서 나도 사랑을 좀 알아,라고 센 척을 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연애 한 번은 해 보았고, 직장동료였던 친구 등을 통해 소개받아 몇 번의 데이트 경험은 있었다. 그 모든 걸 버무려서 글을 쓰다 보면 나도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 좀 알게 될 것도 같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조급했고, 서툴렀다. 첫 연애의 상대는 심드렁했다. 상대는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나는 단지 내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상대를 사랑한다고 착각했다. 둘 사이에는 '사랑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오고 간 적이 없다.




지금의 그를 만나고서야, 나는 이것이 진정 첫사랑이며 첫 번째 연애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처음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해'라고 말해보았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마음에 없는 말로 포장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나는 때로 마음에 없는 말이어도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그러한 일로도 많이 싸웠다. 연애 경험치가 0에 수렴했던 나의 극단성은 늘 그를 힘들게 하고 때로 자극했다. 내 생에 가장 많은 다툼이 그와의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그를 놓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살면서 가장 큰 인내를 나를 통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때로 그를 야속하다고 생각하고, 미워하면서도 늘 그를 좋아하고 그를 우러러보았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은 어때요?"라고 의심을 담아 물으며 그를 괴롭게 하는 날들도 있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에게 자꾸만 말로 하기를 종용했다.


그와의 네 번째 계절을 앞두고 있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그가 많이 아팠던 며칠. 나는 마음이 한없이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오늘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정말 우습게도,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다. 그의 얼굴이나 표정들을 떠올리며 그립다는 생각도 했다.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항상 나보다 꽤 연상인 그를 귀엽다고 표현한다. 그가 콤플렉스로 여기는 얼굴의 주근깨를 나는 좋아한다. 그런 점을 그는 싫어한다. 그래서 그의 콤플렉스를 좋아하는 나 자신이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의 모든 점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이 전에 한 번도 없었던 감정이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이토록 소중히 여기는 일도, 대신 아파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도, 남자를 귀엽다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일도 모두 처음이다.


그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더욱 사랑이 무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꽤 오랜 글들이 읽히면서, 지금의 이 마음이 처음 사랑이라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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