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3)

by 이정연



역 선로를 향해 1미터 높이에서 추락한 이후 가장 걱정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다친 곳이 투석을 하는 왼팔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소 다니는 대학병원으로 갔다. 나의 모든 차트가 있는 곳이고, 혈관을 봐주시는 K교수님 존재만으로 마음에 안정 었다.


응급실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겨우 X-ray를 찍었다. 잘못된 부위가 찍혀서 판독이 힘들다며ㅃ 응급실에 있던 정형외과의 젊은 선생이 X-ray 처방을 되풀이했다. 영상실 앞에서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는데 예진실 간호사가 날 찾았다.

"맨홀 뚜껑에 빠진 거 맞죠?"

이건 또 뭔 황당한 소리지?

-네? 전혀 아닌데요. 기차역 선로로 떨어졌다고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그거 제 진료 의뢰서인가요? 저 좀 읽어도 되나요?


세상에... 길고 긴 진료 의뢰서에 '주치의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리만 써 놓았다. '공사장 맨홀 뚜껑에 빠져서 골절상을 입었다'는 것이 의뢰서의 주요 내용. 내가 그렇게 또박또박 설명을 했건만... 얘기를 귓등으로도 안 들었군.

그녀와의 이별 결심을 확고하게 굳힌 여름날 이후, 그녀의 행동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져서 마음이 조금 흔들리기도 했던 나 자신이 우스웠다. 시 그녀다.


몇 차례의 재촬영 후, 처치실로 끌려 들어갔다. 손등이 퉁퉁 부어 있었던 이유가 부러진 뼈가 손등 쪽으로 튀어나와있어서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뼈를 제자리에 돌려놓고서 얘기하잖다.


정형외과의 젊은 선생은 말투가 뾰족했다. 여자 인턴 선생이 타박 무진 받더니 쫓겨나고, 다른 인턴 선생이 처치실로 들어왔다.

"HD(혈액투석)하는 쪽에 이런 골절 양상이라니. (인턴 선생을 향해) 이런 케이스 본 적 있어요?"

아니요,라고 답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인턴 선생에게 잘 봐 두라고 말하는 젊은 선생의 모든 문장에는 곤란한 투가 묻어났다.


그들은 나를 처치실 침상에 앉히더니 부목을 빼 버리고 내 팔을 직각으로 잡았다. 부러진 손목 쪽은 정형외과 선생이, 팔꿈치 쪽은 인턴 선생이 맡았다. 그리고 팔꿈치와 손목을 각각 꽉 잡고서, 늘리고 비틀고 별 별짓을 다했다. 뼈 맞추는 과정에 대해 겁을 집에 먹고 들어온 것치고는 견딜만하다, 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내 목청에서 시원하고도 날카로운 비명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또 견딜만해졌다.

정형외과 선생은 내 엄지와 검지, 중지를 한 번에 쥐더니 꺾이면 안 될 법한 각도까지 꺾어대고 있었다. 그때마다 고막을 통해 나의 고통을 느끼고, 가장 가까이에서 고통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을 목도하던 인턴 선생은 다정하게 나를 격려하고 달랬다.

"환자분, 잘하고 있어요. 우리 조금만 더 참아봅시다. 다 됐어요, 다 됐어요."


그런 격려의 말이 내 귀와 마음에 꽂히더니 정말로 뼈를 맞추는 일이 끝났다. 그들은 이제 깁스 준비를 했다. 인턴 선생이 길고 긴, 폼으로 된 재료를 물에 흠뻑 적셔서 갖고 오자 그들은 그걸로 내 팔꿈치부터 손가락 마디까지를 덮었다. 그리고 아까처럼 양쪽에서 잡고 그것을 굳혀나갔다. 피부에 뜨거운 기운이 전해졌다. 그러더니 손가락 관절 팔꿈치 쪽을 서걱서걱 가위로 잘라낸다. 꿈치 쪽에 구멍을 내주었다. 그리고 압박 붕대로 아주 단단하게 깁스를 고정해주었다.

원래는 팔꿈치까지를 다 덮듯이 통깁스를 해야 하는데 투석혈관 때문에 이런 식의 반깁스가 최선이었다.


그토록 뾰족하던 정형외과 선생도 처치실에서의 모든 과정이 끝나자, 답지 않은 애교스러운 말투로 "고생하셨습니당." 하고는 내 목에 팔걸이를 다정하게 걸어주었다. 가슴 앞으로 깁스한 팔이 직각으로 번쩍 들렸다.


그리고 또 뼈의 상태를 찍더니 응급실 데스크로 나를 불렀다.

"일단은 뼈가 제자리에 잘 맞추어졌고요, 이 상태로 일주일을 지켜본 후에 수술 여부를 알 수 있겠네요. 항상 손 높이 유지하시고, 조심해서 생활하세요."

그는 뼈를 잘 맞춘 자신의 능력이 뿌듯한 것 같은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나의 골절이 또 한 젊은 의사를 성장하게 하였구나 싶어서 나도 인간 교보재로써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절대 안정, 하면 되는 것이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그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절대 안정이요? 으하하하하."

뼈는 부러져도 나의 위트는 어디 가지 않았구먼. 절대 안정이 필요한 수준은 아닌가 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웃거나 말거나 무조건 절대 안정하기로 결심했다.


깁스를 했던 10월 1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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