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이에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인공신장실의 주치의에게 끊임없이 실망했고,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관계들이 주변에 넘쳤다.
투석생활 10년 중 최악의 몸 상태가 이어졌고, 뇌종양(사실은 아니었지만), 뇌혈관 기형 등 온갖 사건들이 나를 흔들었다.
그뿐 아니라 외모에 대한 비하를 가장 많이 들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온 우주가 나를 괴롭히고, 망가뜨리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이미 나를 통해 재미를 많이 봤으면서 또, 말이다. 크크크.
1990년대, 나는 통통한 어린이였다. 통통한 몸이 자랑거리는 아니었지만, 나의 통통함을 비난하는 이도 없었다. 건강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주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꼭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어른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인 명숙 씨였다.
명숙 씨는 우리 집에 전화해서 정연이는 다 좋은데 뚱뚱한 것이 아주 문제라며, 엄마에게 날 수영장에 보내 살을 빼게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지금처럼뚱뚱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짓'이라고 아주 호통을 친 덕에 나는 수화기 너머로 명숙 씨의 모든 속내를 명료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반항기가 있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그 얘기를 듣고서 무척이나 분노했고, 살을 되려 빼지 않았다. 수영장 같은 소리 하네. 수영장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으며, 문구사에서 파는 떡볶이와 피카츄 돈가스, 그리고 엄마의 김치찌개를 더욱 가열차게 먹었다.
우스운 건, 반장에 학생회장이어도 뚱뚱하기 때문에 정연이의 인생은 망할 거라고 쯧쯧거리고 소리치던 명숙 씨는 내 체구의 두 배 이상으로 컸다. 결코 키가 크고 골격이 좋은 여성들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는 없다.다만 명숙 씨는 그 어떤 심한 말을 들어도 싸다. 그래서 한 마디 하자면, 명숙 씨는 진짜 꼴 보기 싫게 뚱뚱했다. 그런 사람은 명숙 씨 외에는 본 적이 없다. 맹세코.
명숙 씨가 나를 그렇게 비난해도, 나는 내가 비난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 적 없다. 일단 엄마는 나를 수영장에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엄마는 가끔 내가 원하면 세 공기째 밥을 퍼 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비난하는 사람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스럽게 여겨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어린이였을 뿐이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명숙 씨 외에는 나를 뚱뚱하다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짓궂은 남자애들 중 일부는 나를 놀리기도 했지만, 내가 당당한 눈빛을 하면 그 애들은 금방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런 또래 아이들 쯤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정도는 내 마음에 작은 흠집 외에는 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친구 A 집에 놀러 갔던 날, 친구네 어머니가 김치볶음밥을 해 주셨다. 그 김치볶음밥은 정말 맛있었는데, 친구 어머니의 화법은 그렇질 못했다. 그때 친구 A네 집에 놀러 간 것은 나와 또 다른 친구 M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나와 M은 모두 통통했다. 상을 차려주시면서 어머니는 그러셨다. "아이고, 너거들은 뚱뚱해가 밥 윽쑤로 쪼매씩만 묵고. 살 마아~이(많이) 빼야겠다. 쯧쯧쯧."
어렸지만, 어머니의 그 말이 참 치사하게 들렸다. 우리는 그 집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이미 이 상태였다. 김치볶음밥을 해서 밥상을 차려주시면서 이제와 뚱뚱하니 밥을 적게 먹으라는 비난이라니. 심지어 볶음밥도 꽤 큰 그릇에 퍼 주셨으면서 말이지. 들어오는 꼴을 보셨으면 처음부터 밥을 볶아주지 마셨어야죠.
그 소리를 듣고도 김치볶음밥이 맛있었던 어린 날의 내가 밉다!
물론 친구 A가 말라서 M과 내가 상대적으로 더 비대해 보였을 수는 있겠으나,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친구 어머니 셨기에 기분이 상했다거나 상처받았다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20년 가까이 흐른 뒤 다시 A네 집을 찾았을 때, 어머니는 내게 그런 말씀을 하신 사실을 아예 기억도 못하고 계셨다.
김치볶음밥 사건 이후로 나는 나를 향한 비난에 철저히 준비된 소녀로 살아가게 되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내게 뚱뚱하다는 비난을 하면, 나는 뚱뚱한 주제에 예민하기까지 하면 더 밉보일까 싶어 성격 좋은 척 "하필이면 우리 아부지가 돈을 억수로 잘 버셔 가지고, 흰쌀밥 하고 고기를 너무 마이 먹여서 살이 이래 쪘습니다. 우야겠십니꺼."라고 되받아쳐줘야지. 그리고 결국 어른들은 연습한 이 문장을 실제로 내뱉게 만들었다.
어쩌다 만나는 어른들은 실례인 줄도 모르고, 남의 집 귀한 딸에게 뚱뚱하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이런 연유로, 나는 절대로 남의 외모를 가지고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어른은 되지 않기로 했고, 다행히 지금껏 그런 어른으로 살아오지 않았다.외모에 대해서는 결코 얘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칭찬이 아니라 비난이라면 더더욱.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세상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를 못생겼다거나 뚱뚱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평가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에 유난히 외모를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내 외모를 가지고 뭐라고 하는 새 친구도 있었다. 나에게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선물해주는 등 자꾸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하여서 고맙고 미안했는데, 자꾸 나의 외모를 가지고 뭐라고 했다. 내 카톡 프로필 사진만 보아도 내 덩치가 커 보인다나? 브런치에서도 똑같이 쓰는 프로필 사진이었다. 대체 나를 언제 보았다고, 사진만으로 나의 덩치가 보인다고 하는 거지?
짜증이 팍 나서, 말했다. 보시는 대로 덩치가 매우 우람하니까 맞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시라고. 그런 식으로 뼈 있는 농담을 계속했음에도 그 친구는 내 말속의 뼈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 친구를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였음에도 서로 꽤 편하게 대해왔었기에 그 친구 나름대로 친밀감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외모 까기를 하는 듯했는데, 나는 심지어 친동생의 외모도 절대 까지 않는다. 내가 들었을 때 기분 나쁜 말은 나 아닌 타인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상식이었으므로. 그러나 친구는 계속해서 외모에 관해 선 넘는 발언을 하다가, "너는 살 조금만 찌면 바로 남자 친구한테 차이겠다, 야."라고까지 했다. 기분이 매우 나빴다. 나의 매력이나 마음이 고작 몇 킬로그램의 체중에 가려질 성질의 것도 아니거니와, 그런 발언은 나뿐 아니라 남자 친구도 욕되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남자친구는 사람의 가치를 외모에만 두는 사람이 아니다. 그랬다면 나처럼 키 작고 볼품없는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겠지.
그래. 사실은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 그래서 더 친구의 말이 듣기 싫었는지도 모른다.팩트폭격 당하는 기분이 자꾸 드는 것 같은 날이 있었던 것도 같다.
평균보다도 작은 키, 나쁜 인상은 아니지만 어디서나 눈에 띌 만큼의 그런 화려하게 어여쁜 외모가 나에게는 없다. 어릴 때부터 통통했고, 고등학생 때는 최고 체중에 이르렀으며(당신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20대 초반에 다이어트에 대성공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보통의 체격이었다. 아프고 나서, 내 속에서 젊음과 활기가 빠져나가고 나서야 마르다는 소리를 듣게 된 애닳픈 몸의 역사를 가진 내게 외모 지적은 정말 상처가 되는 일이다.
내게 잘해주려 노력하는 친구지만, 내게 잘해준다는 이유로 계속되는 외모에 대한 비난을 내가 감내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너의 이러이러한 말들이 나는 정말로 기분 나쁘고, 상처가 되었다. 말하여도 그 친구가 어떻게 대응할지 나는 알고 있었다. 장난이라도 외모를 가지고 말하는 건 싫다고 했더니, 본인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들의 말을 인정한다고 하기에 더는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따지고 들면 나만 장난에 예민한 사람이 되는 그림이 그려지기에,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친구와 나는 결이 다르다. 굉장히 유쾌한 친구여서 쉽게 친구가 되었지만, 서로 다르기에 더는 친구로 지내지 않는 것이 맞겠다.
정말 불행하게도, 지금의 나는 지난 10년의 투석생활 중 가장 뚱뚱한 몸이 되었다. 조금씩 체중이 늘어갈 때마다,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조금만 체중이 늘어도 남자 친구에게 차이겠다고 했던 그 말이. 고작 몇 달 친구로 지냈을 뿐인데도 그 말이 그렇게 남아 나를 괴롭혔다. 아직 차이지는 않았지만.
처음 투병 생활을 시작하고, 아예 식사를 하지 못해서 늘 골골대던 그때는 살이 좀 쪄도 좋으니 건강해지기만 하면 좋겠다고 수없이 생각했었는데, 막상 살이 찌고 보니 살이 찐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체중이 늘어난 이후로, 혈액검사 결과는 매번 최악을 경신하고 있다.어제 2월의 혈액 검사 결과지를 본 담당 간호사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이제 아주 빡빡하게 식이조절을 하고, 운동을 해서 혈액검사 결과가 가장 좋았던 때의 체중으로 돌아가야 한다.늘 변화가 거의 없이 유지되었던 체중에 따라 건강도 유지되었던 것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화나게 한 주치의와 온 우주에 과식으로 맞섰던 어리석은 나를 반성한다. 고작 몇 킬로그램의 체중이 나의 가치를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도 나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거울을 보면서 나를 보듬어주고, 몇 번이고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말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