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다만 당신에게만 말했지요
사실 나는 지금 힘들어요.
많이 아파요.
10년의 투병생활 중 지금 가장 아파요.
이제는 치료를 하지 않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이 비참한 삶을 끝내고 싶어요.
내가 무언가 하지 않아도,
치료를 중단하는 것만으로
이 생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은
슬픈 한 편 얼마나 우아하고 편리한가요.
당신을 미워해서
소리 지른 것이 아니에요.
내 아픈 삶이 초라하고 비참해서
매일같이 화가 났어요.
아니,
당신을 제외한 모든 우주가 미웠어요.
아주 가끔은,
어쩌면 당신도.
9년 동안은 건강했어요.
건강해서
아무런 가책 없이
당신이 내민 손을 덥석 잡았어요.
아픈 시간 동안
왜 위기가 없었겠어요.
그러나 아프다는 말로
주변을 당황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나는
오랜 시간을
건강하고 밝게 살았어요.
그러나 내 몸이
한계에 부딪힌 순간,
내 마음도 한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어요.
그 누구도 관심이 없는
나의 산산조각을
당신만은 알았지.
늘 내 곁에 있었으니까.
나를 보고 있으니까.
당신은 산산조각 난 나를 거두어들였지.
커다란 당신이
소리 내어 엉엉 우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마음을 고쳐 먹었어.
당신이 내게 달려온 순간,
모든 시름을 잊고
나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녔지.
그러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당신 옆으로 가 손을 내밀어 잡기도 하면서.
그렇게 신나게 뛰어 논 그 밤,
당신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당신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
당신하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그리고 당신의
절절한 연애편지를 받아 든 오늘,
산산조각 났던 나는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운다.
나는 살기로 했어.
이제 당신은 나의 토양.
나는 당신에게 뿌리내리고,
그렇게 다시 한번 살아 볼래.
남들이 말했던 나의 운명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의 운명대로.
죽지 않고 살아볼 테야.
당신과 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