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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에 수제비 데워서 먹고 집 잘 보고 있어라.

by 이정연



동생은 늘 좋은 일이 있을 때, 내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어 했다. 얼굴을 볼 수 있을 때는 꼭 얼굴을 마주하고 그 소식을 알리려 하였고, 그렇지 않을 때에도 꼭 마주한 듯이 수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소식을 전했다.

준비하던 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랬고,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도 그랬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에서도 도태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깊은 관계들은 그렇지 않은데, 적당 적당한 관계들은 서서히 나를 떨어뜨려놓고 말았다.

결혼할 때가 되어 결혼을 하고, 출산할 때가 되어 출산을 하고. 세상이 말하는 적절한 속도로 살아가는 그 친구들은, 결국 세상과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나와는 연락하기를 꺼리더라. 어쩌면 이 또한 나의 자격지심인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과 삶의 궤를 함께하는 친구와만 어울리더란 말이지.


20대 초반에 만나 지금껏 이어져온 친구와는 20대에는 한 동네에 살아서, 과제를 프린트하러 우리 집에도 올 정도였다. 어머니도 나에 대해서 잘 아시고 안부를 물을 정도인데도... 차 한잔 마시기로 했던 약속조차 지키지 않더라.


아, 결국 사는 세계가 다르니 어쩔 수가 없구나. 내 쪽에서 포기하는 것이 맞는구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친구의 SNS 스토리나 피드를 보면, 약속이 많았다. 대신 본인과 비슷한 삶을 영위하는 친구들과만.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싶지 않은 것뿐이라는 사실을 용기 있게 마주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그 친구의 취향은 내가 아닌 것이지, 어쩌겠어. 솔직히 아주 조금 섭섭하긴 했다.


아주 오랜 동창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곡절이 있었다 보니, 학창 시절 교내의 유재석이었음에도 졸업 이후 내 연락처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동창 A는 나와 친한 친구 몇을 공략해 그토록 내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 애쓰던 친구였다.

그 노력이 고마워서 결국 내 쪽에서 연락을 했는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다르다 보니 안부를 묻는 일도 나중에는 사라지더라.

그 친구도 교류하는 친구라고는, 딸내미 학교친구 엄마들, 본인 친정어머니, 직장동료들 뿐이더라.

나와는 서로 길이 다른 것을...




그래서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전하고자 하는 동생의 마음씀이 시간이 흐를수록 무겁고, 또 하다.

8월 초에는 동생네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엄마가 코로나에 걸리시는 바람에 약속을 취소하였던 터라 더 늦기 전에 동생을 만나러 간다. 이제 두어 달 후면 쌍둥이 남매가 태어날 테니, 그전에 꼭 얼굴을 봐 두고 싶다.


내일 집에 혼자 있을 엄마를 생각해서 수제비를 끓여두고 책상 앞에 앉았다. 외출하려면 집안일도 어느 정도 다 해두고, 애들 먹을 것도 다 해두고 나가야 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내일 아침에는 기차 시간 때문에 새벽같이 나가야 하는데, 수제비랑 먹을 김치도 미리 새 반찬통에 덜어놓았다. 엄마가 바로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아.. 나이 든 딸을 키우는 이 삶이란.


엄마는 유독 내가 끓인 수제비를 좋아한다. "내일 OO 만나러 나가니까, 수제비 끓여둘까요?" 하니 엄마 표정이 환해졌다, 밤 11시 반에 수제비를 끓인다고 가스에 냄비를 얹었다.

그런데 냉장고 있는 줄 알았던 깐 감자도 다 상했고, 생각했던 재료는 거의 없다. 그래도 그냥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수제비를 끓였다. 간을 봤는데, 아주 쫄깃하고 맛있다. 잘 끓여졌다. 물론 감자가 없다고 했을 때 엄마 표정은 나라를 잃은 표정이던데... 다음 주 중에 다시 재료를 사다가 맛있게 끓여드리면 되지.


"냄비에 수제비 데워서 꼭꼭 씹어 먹고, 집 잘 보고 있거라 늙은 딸아."


여전히 나를 우주의 왕따를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기분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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