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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Oct 02. 2023

잿빛의 글


(010) 2023년 10월 2일 월요일


글을 쓰지 못한 무수히 많은 밤을 생각한다.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다. 무수히 많은 손에 바늘을 찔리며 알게 되는 것은, 사람마다 손 끝이 다르다는 것.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팔을 어루만지며 살살 바늘을 찔러 넣고, 누군가는 작은 손짓 하나에서도 '팍팍' 무신경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대체로 무신경한 기운이 느껴지는 손이 바늘도 아프게 찌른다. 그래서일까. 오늘 지혈대를 묶어둔 팔에서 피가 줄줄 샜다. 피를 이렇게 잃은 날은 기분이 좋지 않다.

글을 쓰지 못한 무수히 많은 밤을 생각다. 그리고 그날들의 대부분, 나는 이렇게 피를 잃었던 것 같다. 피를 잃은 날, 나는 우울에 몸부림치며 글을 쓰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쓴다. 그저 쓴다는 사실이면 되지 않나, 오늘은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 글을 쓰지 못한 무수히 많은 밤, 피를 잃은 오후. 어떤 위로를 한참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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