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연 Oct 07. 2023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아니고 이정연의 단순한 열정.


(015)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출근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등산 가는 동생을 따라나섰다. 동생은 7시 20분까지 시내에 있는 전철역 앞까지 가야 한단다. 전철역 가는 길에 우리 회사 동네를 지나친다. 지난밤에 나를 꼭 실어가라 당부를 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런저런 생각에 또 뒤척이느라 쉬이 잠들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 수면 후에 6시 10분 동생이 내 방문을 두드리기 직전에 눈을 떴다. 아침 요기를 간단하게 하고, 출근 준비를 하고 6시 50분 함께 집을 나섰다.


20여분 달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 즐겁다. 동생과 나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 개인 신상에 관한 일들을 서로에게 털어놓고 마음의 때도 말끔하게 지운다. 이런 우리를 두고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한다. 우리는 산골에서도 잠깐 살았던 적이 있고, 어쩔 수 없이 온 우주에 둘 뿐이었던 시간이 길었다. 자연히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각자의 인간관계가 있지만, 그래도 다른 남매들에 비해 가깝다.


회사 근처에 있는 24시간 카페 앞에 동생이 나를 내려주고 떠난다. 무조건 글을 쓸 마음으로 간밤에 가벼운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방에 챙겨두었다. 그리고 대단한 글을 쓰겠다는 결심으로 일단 오늘의 챌린지 글부터 써두자 하고 세 줄을 써둠과 동시에 대표님이 나타나셨다. 사실 이 카페는 대표님이 부업으로 하시는 페다. 날 보더니 얼굴이 환해지셨다. 그러더니 알바를 제안하신다. 주말에 나와서 관리하기가 버겁다고, 날더러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카페 일을 보고 가는 것이 어떠냐 하신다. 대표님도 모르게 자꾸 나에게 관리하는 일을 설명하시기에, 또 성격상 대표님을 따라다니며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고 귀여운 일자리 하나를 얻었다.


조금 더 열정적으로 살고 싶었다. 조금 더 부지런히, 생산적으로. 그러나 아픈 일은 늘 나를 삼켰다. 밤에 잠들지 못하게 했고, 치료 후에는 사람을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병든 닭처럼 조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조금 더 단단해져야만 하는 일이 내 어깨에 얹혔다. 나는 단순한 열정으로, 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고민은 하지 않았다. 단순한 열정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마법을 걸듯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