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할머니는 손을 하늘로 뻗으며 펼쳤다.
"나비야, 훨훨 날아가거라."
할머니의 성긴 주먹 안에 있던 하얀 나비가 세차게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역 앞에서 할머니는 하얀 나비를 날려 보내주고, 두어 걸음을 옮겨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두어 걸음 뒤에서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둥글게 둥글게 할머니들이 모여계셨다. 다 함께 모여 어디를 가시려는 것 같았다. 왁지지껄한 그 할머니들 사이로 돌아간 할머니의 하얀 머리칼이 나비와 같았다.
"블쌍한 녀석, 제대로 날아가야지."
"호호호호. 그러니까~ 잘 날려줬어, 언니~."
웃음이 씨익 하고 났다. 갈 곳을 잃고 역사 입구에서 방황하며 천천히 나는 하얀 나비가 상상되었다. 재빠른 하얀 머리칼의 할머니는 그 녀석을 오목한 손바닥 안에 끌어들여 손아귀 입을 닫았을 테다. 그리고 맑은 가을 하늘로 애정을 담아 훨훨 날려주었지. 나와는 관계없는 작은 생명에게도 시간과 애정을 담아 애쓰는 어느 어른의 하얀 머리칼이, 하얀 미소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음을 다친 하루, 낮의 그 광경을 떠올리며 마음을 어루만진다. 내가 허락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내 마음을 난도질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친 날은 절대로 글을 쓰지 못한다. 지금껏 아주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한 것은, 늘 마음을 다친 개별적인 날들이 모여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매일 같은 톤의 글을 쓰고 싶은데, 목소리는 늘 달라진다. 어느 날은 높은 톤, 어느 날은 낮은 톤, 어느 날은 쇳소리 난다. 그래도 마음을 다친 날에도 지배받지 않는 오늘에 감사한다. 낮의 아름다운 장면, 하얀 할머니의 머리칼과 하얀 나비가 글을 쓰도록 손가락을 움직이게 해 주었다. 고마운 장면. 그 장면이 나를 움직였듯이, 상처받은 당신의 하루에도 당신을 움직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이 부디 있었기를.
그렇게 우리 함께 나비처럼 날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