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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Oct 22. 2023

겸손해지는 순간.


(029)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여름의 수박 냄새가 나는 아침이었다.

카페 일 중 실수한 부분에 대해 확실하게 배우고 나왔다. 간밤에 비가 내려서 촉촉하게 젖은 땅에서는 수박 냄새가 났다. 마음이 몽글해졌다.


그리고 이내 들어선 학교 옆 통학로를 걸으니, 낙엽 바스러지는 냄새가 났다.


별 것 아닌 냄새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 이런 아침을 자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월, 수, 금 아침 투석을 가는 삶은 아침의 향기를 만끽할 여유가 없다. 늘 새벽 6시 37분 버스를 타고, 뒤이어 전철로 갈아타는 아침은 여유가 없어서인지 그 어떤 향기도 입력이 되지 않는다. 이제 갑자기 겨울. 겨울의 새벽은 매콤하고 매서운 공기를 한껏 코에 불어넣겠지.


마지막으로 코에 남은 냄새가 여름의 수박 냄새, 낙엽 바스러지는 냄새라니 다행스럽다. 그후로 코가 막혔다.

금요일에 투석을 하고 돌아오는 길,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불었다.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 것 같아, 집에 가자마자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에 빠져들었다. 두통이 심해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잠깐 깨어나 저녁을 먹고는 또 잠들었다. 덕분에 줌으로 듣는 강의를 놓쳤다.


주말은 몸살로 정신 못 차리게 아팠다. 사실 아픈 것이 직업이다 보니, 웬만큼 아파서는 앓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너무너무 아파서 퇴근이 가까워 즈음에는 회사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있었다. 언제나 날 지켜보시는 부장님이 쉬시는 날이어서 머리를 박고 있을 수 있었다.

미룰 수 있는 업무는 살짝 미뤄두고 퇴근을 했다. 퇴근을 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K장녀의 문간방으로 가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땀을 흠뻑 흘리며, 침을 아주 많이 흘리며 그렇게 새벽녘까지 푸욱 잤다.


그리고 아침, 이것저것 많이도 쏟아낸 덕분인지 몸은 어제보다 훨씬 가뿐하다. 건강이 본디 좋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감기도 몸살도 앓지 않고 살았는데, 이렇게 아픈 덕분에 오히려 겸손한 마음이 생긴다. 챌린지 글을 미리미리 써두지 않음을 후회했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또 이어가야지.

답이 많은 나의 친한 친구는 내가 챌린지 글도 올리지 않고, 카톡도 읽지 않기에 무슨 일이 있구나 생각했단다. 간밤에는 핸드폰도 충전시키지 않고, 아무 데나 던져놓았었다.


아프지만 젊기 때문에 몸을 마구 썼던 날들을 반성한다.  요즈음 들어 밤샘은 또 얼마나 많이 했던가. 이전에도 잠이 좀 오지 않는다 싶으면 아무렇게나 밤샘을 하고 투석을 가기도 하고, 끼니도 제때 챙기지 않고 나를 돌봐주지 않았던 날들 때문에 이런 몸살로 나를 반성하게 하는구나. 내가 나를 아껴주어야지, 내가 나를 살뜰히 돌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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