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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님은 왜 나를 사랑하는가

글을 다 써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by 이정연



그녀와의 전화를 끊고, 나는 잠깐 엉엉 울었다. 내가 무얼 했다고 그녀는 이렇게 한결같이 내 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우리 사이에는 오랜 세월이 있다. 나는 그녀를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나를 손녀처럼 대한다. 무얼 하든 나를 예뻐한다. 그냥, 내게는 무조건 무조건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다지 인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친척들에게도 외면받아봤다.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게는 허락된 복이 그다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나의 에세이 강의를 들었던 분들은 "작가님은 자존감이 참 높으신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정말 자존감이 낮았다. 한때는 주변 사람들의 시녀 노릇을 자처할 정도였다. 내 이미지를 깎아먹을 정도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주변에 늘 자존감 도둑들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그거다. '네가 병 걸린 불쌍한 애라서 사람들이 잘해준다.'는 말. 내가 자존감이 높았으면 그런 말에 콧방귀도 안 뀌었겠지만, 그런 말에 흔들릴 만큼 참 연약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게 할머니와 명희 씨는 이상하리만치 무조건적인 애정을 주는 신기한 사람들이었다. 나를 깎아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스스로 어깨 움츠러들어있을 때 화를 내준 두 사람이었다.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다.


할머니와 나는 나이차가 십오 년이 난다. 그렇지만 할머니다. 우리는 그냥 할머니와 손녀다. 좀 특별하다.

사실 나 말고도 할머니를 따르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우리는 한 취미 모임에서 만났다. 그 모임에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할머니는 유독 나를 귀여워하고 챙겨주셨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보내준 옥수수, 고구마, 장터에서 갓 구운 맥반석 김 등이 수시로 도착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었다. 귀여운 정연이만 챙겨준 거니까.

할머니를 만나러 모임분들과 당일치기로 강원도를 여러 번 오갔고, 나 혼자서도 기차를 타고 할머니를 만나고 온 적이 몇 번이나 있다. 청량리까지 전철을 타고 가서, 또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이나 달려야 한다. 그렇게 엉덩이가 부서져도 달려갔다. 그리고 그날 돌아왔다. 외박은 절대 안 된다는 딸 때문에 기차로 왕복해 서울에 돌아와, 다시 경기도 집까지 돌아오니 새벽 2시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보다 젊고 체력이 좋았기에 가능했던 일일게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만났던 때는, 나 편하라고 할머니가 KTX 제천역까지 오셨다. 할머니 차를 타고 제천에서 강원도까지 갔다. 할머니 집에도 가고, 할머니 가게에 가서 양파도 깠다. 다시 꼬불꼬불한 강원도 도로를 타고 제천으로 내려와 저녁을 먹고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었다. 그것이 벌써 2022년 4월. 2년이나 되었는데도 늘 통화를 하니까 만나지 않았던 시간이 실감 나지 않는다.


사실 씩씩하고 귀여운 이정연에게도 암흑 같은 시기가 있었다. 이정연이 강철 로봇도 아니고, 정말 뒤지게 힘들 때 할머니가 나를 잡아주었다. 살아야 한다고 보듬어주고 호통쳐주었다. 그러고 보니 그 시간들을 지나지 않았으면, 브런치에서 글을 쓰지 못했을 거다. 처음 나이 든 딸의 엄마가 되어 힘들 때에도, 할머니가 늘 힘이 되어 주셨다. 혼자 울지 말라고 늘 내게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정연아, 힘들면 무조건 할머니한테 전화해. 언제든지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다 얘기해, 알았지?"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 때, 어김없이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정연아, 괜찮아? 정연이가 어제 꿈에 나왔어. 그래서 힘든데 혼자 앓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걸어봤지."


타인에게 먼저 전화를 잘 걸지 않는 내가, 언제부턴가 할머니에게는 먼저 전화를 걸어서 애교를 부린다. 할머니가 귀여운 정연이 보고 싶을 때가 됐을 것 같아서 전화 했다는 소리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한다. 나를 사랑해 주는 누군가는 내게 뻔뻔해도 될 자유를 주었다.


그 언제부턴가 나는 늘 그녀에게 어떤 편지를 쓰든 이렇게 말한다. "박정은 님은 내게 고향 같아요. 이제 내게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생겼구나. 지쳤을 때 할머니 곁으로 돌아가면 되겠구나... 그래서 힘을 낼 수 있어요."


요즘 또 마음이 깨지고 다쳐, 이런저런 걱정들에 짓눌려 있는 내게 할머니는 이야기한다. "좋은 사람들만 보고 살아. 악한 건 보지 마. 스트레스받지 말고. 내가 이정연이다. 그 생각만 해."

할머니는 나를 처음 봤을 때, 대번 알았다고 한다.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영원히 마음을 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마냥 착하지만은 않다는 건 안다. 성질도 보통이 아닌 것을 안다고 하면서 웃으신다. 하지만 바보같이 선한 것만은 알아서 영원히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고. 지금도, 앞으로도 할머니의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우리 정연이 힘내라고 하는 할머니와 전화를 끊고, 나는 잠깐 엎드려 엉엉 울었다.


늘 나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의 말에 집중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 말이 들리면 그 소리에 유난히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그 말에 잠식당하기도 했다. 그들의 말이 진실인 듯이 나를 속이기도 했다. 그렇게 쓰러져서 울기도 했다.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거짓말이다. 그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다.

할머니가 말한다. 너는 최고다, 너는 행복해도 된다. 내가 처음 에세이 강의를 했던 날, 할머니는 울었다. 우리 정연이가 이제 좀 행복해지는 것 같아서. 할머니가 너무 좋다고, 그 단단한 분이 울었다. 지금도 할머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내 책 표지 이미지다. 내가 잘되기만 바라는 사람, 내가 건강해지기만 바라는 사람. 그저 나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 70년대에 태어난 나의 할머니 박정은 여사. 내가 행복해지는 것으로 정말 제대로 된 효도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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