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광안리에서

by 이정연


어쩌면 이건 도전이었다. 언제부턴가 투석치료가 끝난 후 다른 곳으로 가는 일이 힘들어졌다. 겨우 간다는 곳은 서울의 대학병원 외래정도.


건강했던 몇 년 전에는, 월수금에도 약속을 잡았다. 집 밖에 나온 김에 투석하고, 약속까지 해치우고 들어가자는 심산이었다. 그걸 받쳐줄 체력이 됐다. 투석하고 서울까지 나갔다가 집에 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후, 일부러라도 그런 일을 피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아예 투석이 있는 날에는 무조건 귀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병원에 다녀오는 일만으로도 버거웠다.


오늘은 병원이 끝나고 바로 기차역으로 갔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1시 30분,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오는 시간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기차에 있는 시간이 1시간 반을 넘어서자 귀가 먹먹하긴 했지만, 자세가 불편해서 자주 고쳐 앉긴 했지만 기차를 타고 있는 3시간 내내 원고를 읽었다. 오탈자를 확인하는 마지막 작업을 하는 중이다. 권 분량의 반을 확인했다. 150페이지. 미 수십 번은 읽었을 글인데도 눈물이 나고, 웃음이 터졌다. 나의 10여 년이 녹아 있는 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뭉클한 글들이 모여 만들어진 책. 어쩌면 보여드려도 부끄럽지 않겠구나 하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지금 광안리 바다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살아 있는 것이 멋지다. 25살에는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나에게 미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이 글을 통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또 많은 기회를 만났다.

지금 내 곁에서 소설을 읽고 있는 예쁜 친구도 브런치를 통해 만난 사람이다. 나의 글을 찾아와 오래 머물러 준 친구. 그것이 인연이 되어 몇 년 간 교류를 하다가 지난가을에 리 동네에서 처음 만났다.


부산에서 나를 만나러 멀리까지 와 주었던 친구를 위해, 이번에는 내가 부산으로 왔다. 사실 사이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환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광안리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잡았다. 투석이 끝나자마자 여유롭게 전철을 타고 일산의 기차역까지 가서 KTX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글을 쓰면서도 계속 친구와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광안리 해변을 둘러싼 화려한 불빛을 잠깐 바라보고, 나머지 시간은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본다. 이런 좋은 광경을 소중한 사람들과 또 보러 와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오랫동안 글을 쓰며 생각했다. 글을 쓰는 삶 이전에도 밤마다 생각했다. 나의 인생에 좋은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 기쁜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니까 버텨야 한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텼다. 곧 나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온다. 좋은 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행복해지고 싶다.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좋은 날이 왔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버텨야 한다. 분명 내일에 당신을 위해 준비된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