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아르바이트하며 어떤 손님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된 일이 있다. 분명 얼굴은 무척 젊은데, 이미 머리칼이 새하얗게 물들어버린 그녀는 긴 회색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고 너른 이마를 훤하게 내놓았더랬다. 멋진 사람이었다. 눈, 코, 입을 포함한 얼굴은 주름이 없고 무척 미인이었는데 너른 이마에만 주름이 있었다. 사람이 나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유독 깊은 이마 주름이 그녀의 젊은 얼굴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녀를 보며 스물한두 살이었던 이정연은 스스로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정남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정연의 이마는 얼굴의 37.8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데 까딱 잘못해서 이마에 주름이 지면 그 때문에 나이가 엄청 들어 보일 수도 있겠다는 두려운 생각이 바로 그때 스친 것이다.
어린 나이부터 늙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다니 참으로 멋이 없는 청춘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늙지 않고 아득바득 살아왔다. 지난 2년간 육아를 하며 부쩍 늙었다. 2021년 가을만 했어도, 새로 옮긴 병원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차트의 숫자를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엄청 어린 줄 알았다', '내 또래인 줄 알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당시 25살이던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자신의 또래로 생각했다가, 내 진짜 나이를 알고 엄청나게 놀랐다는 것. 나에게 금괴라도 있었다면, 그녀에게 당장 금괴 세 덩이 정도는 쥐어줄 뻔했다.
나름대로 '동안'이라는 사실이 나의 자부심이었다. 예쁘지는 않지만 귀엽고 상큼해, 정도? 뿔테 안경에, 영 꾸밀 줄 모르는 채로 20대를 다 지내왔기에 어려 보이는 것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무기라고 하기엔 참으로 빈약하고, 어디에 휘두를 것인지도 영 모르겠지만.
그런데 늘 나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소중한 사람이 내게 미간 주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주름 진다."하고 미간에 톡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그를 보면서, 나의 표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늘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아주 집중하며 미간에 '내 천(川)'자를 만들고 있었다. 왠지... 나더러 사주에 남자가 없다고 했던 '인사동 사주 선생님'도 이마에 '川'자만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니만. 그때부터 미간 주름 대왕의 끼가 보였나 보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나의 공감 능력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무척 잘한다. 얼마나 공감을 잘하는가 하면, 이야기에 몰입하느라 미간에 주름이 빡 잡히는 것은 아주 기본값이고 친구에게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대로 그날 밤 꿈을 꾼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남자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헤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번 그날밤 꿈에 내가 소중한 사람에게 아주 처참히 차이는 것이다.
표정으로 공감하는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 줄로 굳게 믿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미간에 주름잡는 표정을 기본값으로 지니고 간 것이다. 상대로부터 이해받고 공감받는 것보다 더 위로가 되는 일은 세상에 없으니까, 나라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무표정하게 이야기 듣는 사람을 마주하면 정말 힘이 쭉 빠지지 않는가.
타인의 감정에도 영향을 잘 받고, 드라마나 영화에도 무척 감정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슬프거나 무거운 이야기는 웬만해서 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늘 밝고 재미있는 영상 위주로 보려고 애쓰는 편이고, 나쁜 내용의 글도 잘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내 일처럼 느끼기 때문에 우울한 이야기를 들으면 한껏 빠져버린다. 마음이 힘들면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다. 그런 성격이 나의 미간 주름에 삽질을 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감정적 거리 두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타인의 일은 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지시키기. 정말 슬프고 공감은 되지만 나의 일은 아니다. 타인의 일이다. 냉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늘 그런 연습을 속으로 했다. 그러면서 점점 타인의 이야기에 푹 빠지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가 고민을 털어놓아도, 마음을 다해 듣고 함께 고민하되 그 이야기가 끝나면 나는 그의 일에서 빠져나온다. 내가 그의 일을 해결해 줄 수 없으니, 그냥 들어만 주는 것이다. 그의 일에서 빠져나온 후로는, 그에 대해 곱씹지 않기.
이미 삽질이 깊이 들어간 미간과 이마 주름에는 얼마전부터 특별 관리를 시작했다.
자주 만나는 연상의 친구가 있는데, 여러모로 취향이 일치한다. 그녀는 나와 모든 면에서 다른데, 나와 모든 면에서 통한다. 이것 참 이상한 일 아닌가? 우리는 늘 똑같은 지점에서 화가 나고, 똑같은 지점에서 웃는다.
얼마 전 유퀴즈에서 강지영 아나운서가 그런 말을 했다지? '빡침 포인트'가 똑같은 사람이어야 함께 할 수 있다고. 물론 그녀가 말한 사람은 연애 대상을 두고 한 말이었으나, 나는 친구 간에도 이러한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이러한 점이 화가 나더라, 고 말해도 친구가 왜?라고 말해버리면 이건 뭐 할 말이 없어지는 거지.
친구는 키가 크고 예쁘다. 정연이는 키가 작다. 우리는 참 다른데 묘하게 비슷한 구석들이 많고, '언니, 전 이런 게 빡쳐요'하면 대번 '맞아, 나도!'라는 공감이 진심으로 돌아온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그녀가 얼마 전 만남에서, 내 피부 고민을 듣더니만 꿀템들을 추천해 주었다. 원래 고집이 센 내가 그녀에게는 귀를 활짝 열고 꿀템들을 받아 적었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과감히 카드를 긁었다.
요즘은 젊은이들도 얼굴에 주사를 맞고는 한다지만, 나는 그렇게 하려면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매일 왼팔에 16 게이지의 굵은 바늘을 찌르지 않는가. 이제 그 굵은 바늘은 견디는데 되려 24 게이지, 26 게이지 같은 바늘을 못 견디는 몸이 되어버렸다. 가느다란 바늘이 더 무섭고 아프다. 아니, 그런 무서운 바늘을 얼굴에다? 나에겐 이르다. 그리고 우리 주치의 선생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어리디 어린 내가 얼굴에 주사 맞겠다고 하면 세모눈이 되실 것도 같단 말이지. 이런 내게 친구의 관리 꿀템들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나는 관리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난다. 그리고 깨끗하게 세수를 한다. 관리템을 바르고, 크림을 듬뿍 바른 후 선크림도 발라준 후에야 집을 나선다. 모두 나를 위한 것이다.
전에는 늘 타인의 감정이 나의 감정을 앞섰다. 늘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 밤을 새워 고민하고 사과하는 것이 일이었다. "제가 그때 이러이러한 말 한 것, 마음 상하게 하려고 그런 것 아니에요. 혹시라도 마음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상대는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사실 그런 걸로 꽁해있는 인간이라면 안 만나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에 이로운 일인데. 늘 어리석게 착한 척하며 살았다. 남을 위하는 일이 나에게 남긴 것은, 이마와 미간의 주름뿐이었는데 말이지.
제발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자.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내가 먼저다. 만약 나의 마음이 힘들다면 과감히 공감하기를 멈춰야 하고 귀를 닫아야 한다. 이마와 미간의 주름이 사라지도록 관리템을 바르듯이, 마음의 주름에다가도 좋은 크림을 듬뿍 바르자. 좋은 크림은 내가 나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마음.
나는 또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침을 시작한다. 나는 이제 나의 표정이 제일 궁금하고, 나의 마음이 제일 신경 쓰인다. 나의 마음을 보듬듯이 오늘도 정성스레 이마와 미간 관리를 하며 아침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