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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규 선생과 쫄면과 교보문고

표지사진; 천재창작자 만화가 조경규 선생(1974~)

by 이정연



서로가 궁금하지 않으면, 사랑은 끝난다. 사랑뿐만이 아니다. 모든 관계는 궁금하지 않으면 끝난다. 서른 살 책을 읽으신 분들, 내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어 감상을 들려주셨던 대부분의 분들이 '이정연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라고 하셨다.

이정연은 생의 다음장을 또 충실히 쓰고 있음을 세상에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병팔이 아이돌이니까. 가수가 다음 앨범을 내듯이, 다음 책도 꼭 내야 하는 것이다. 런 마음으로 다시 '쓰는 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는 다짐을 자꾸만 해본다.




간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역시 웹툰이다. 예전에는 요일별로 웹툰을 챙겨보곤 했지만, 요즘은 생각날 때 보는 정도다. 최근화가 발행된 웹툰 두어 편을 보고 나니 볼 것이 없어져서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오무라이스 잼잼'이 목록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2010년대에 무척 좋아했던 웹툰이다. 어쩌다 교보문고에 가도 매대에 놓여있는 이 책의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고, 시리즈를 모두 사서 모을 정도로 팬이었다. 그래서 작가인 조경규 선생에게 몇 번이고 팬 메일을 쓰려고도 했었다. 천재적인 창작재능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나를 다시 먹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2012년 1월 17일,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공식적으로 ESRD 진단을 받은 후 나는 먹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작고 귀엽고 통통한 어린이 시절을 거쳐, 작고 귀엽고 통통한 여학생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아프기 전에는 말랐던 적이 없다. 제기랄. 이런 커밍아웃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차피 브런치 친구들과 오래 사귀면서 언젠가는 이러한 과거를 들키리라고 생각했다. 바로 오늘이었군.


어쨌든 편식은 하되, 먹는 것을 싫어해본 역사는 없다.

초등학교 5학년때였나, 체해서 엄마가 흰 죽을 끓여주었는데 간장 하고는 절대 먹지 않겠다고 우겼다. 그날따라 참치김치찌개의 냄새가 녹진하니 향긋했고, 죽에 간장을 곁들이는 대신 참치김치찌개를 달라고 했던 이정연은 무려 흰 죽을 세 그릇이나 먹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분명 체한 상태였다.

변명을 하나 하자면, 아무리 흰 죽이어도 예쁜 수프접시에 담아달래서 먹었다는 것. 흰 죽 세 대접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내가 2011년 연말부터 ESRD의 증상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식음을 전폐하게 되었다. 훗날 '요독증'으로 인해 울렁거리는 속이 모든 음식을 거부했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달의 입원 생활을 거쳐, 반 내과의 인공신장실에서 치료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나는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조금만 밥을 먹어도 속이 울렁거렸고, 나를 위해 저염식을 시도하는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없이 웩웩거렸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수분으로 몸에 차곡차곡 쌓이는 투석환자 답지 않게, 나는 투석을 하고 다음 투석 날에 가도 되려 수분이 줄어든 상태였다. 나를 너무도 걱정하셨던 당시의 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정연이 너는 삼겹살이라도 먹고 와. 선생님이 너는 무조건 허락이야. 이렇게 투석 때 몸에서 수분을 같이 안 빼면, 오히려 투석 효율도가 떨어져. 입에 당기는 게 있으면 무조건 그걸 먹어."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그날 집에 와서 삼겹살을 구워 먹어 보았지만, 여전히 입맛은 없었다. 종일 먹는 일에 실패했다.

그날 밤 드러누워 경규 선생의 '오무라이스 잼잼'을 보았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침샘이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바로 다음날, 나는 엄마에게 '쫄면'을 주문했다. 전날밤 조경규 선생의 '오무라이스 잼잼'의 주인공이 바로 '쫄면'이었던 것이다.

투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쫄면을 먹어도 되는지 엄마는 조금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 너무도 감격스러워 당장에 장을 보러 갔다. 그리고 점심때 바로 쫄면을 먹을 수 있게끔 커다란 양푼에 채소와 쫄면, 고추장 소스를 넣고 한가득 비벼 주었다.

나는 쫄면을 그릇에 덜어 호로록 삼켰다. 세상에. 속이 울렁거리지가 않는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날 쫄면을 맛있게 먹었다. 론 다 먹고 나서 소화가 되는 줄 알았던 쫄면은 다시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지만. 오랜만에 먹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먹은 음식은 정말이지 너무도 맛있었다. 물론 오랜만에 식도와 위장을 타고 내려간 고추장 소스가 몸에 잘 받았을 리도 없었다.


그 이후, 나는 늘 조경규 선생의 '오무라이스 잼잼'을 보며 음식의 맛을 새롭게 배워가는 것 같았다. 희귀 난치병이 찾아옴과 동시에 집을 나갔던 입맛은, '오무라이스 잼잼'을 읽으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돌아왔다.


그렇게 회복된 이정연은 서울 나들이를 갈 수 있을 만큼 회복되어,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곽지선배와 서울에서 만났다. 곽지선배의 손에 이끌려 명동의 돈가스집엘 갔는데, 세상에 바로 그곳이 조경규 선생이 극찬해 마지않던 바로 그 오래된 돈가스집인 것을 알고는 감격을 하며 돈가스를 베어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서 정연이 우걱거리는 것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곽지선배는 말했다. "오늘부터 선배 말고 언니라고 불러! 앞으로 우리 정연이 먹고 싶은 건 언니가 다 사준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곽지언니에게 잘 얻어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를 먹게 한 사람, 나의 입맛의 구원자 조경규 선생의 책을 교보에서 보면서 나는 늘 마음으로 빌었다. 감히. 나도 언젠가 조경규 선생처럼 교보에서 팔리는 책을 쓰고 싶다고. 막연한 그 꿈이 이루어졌다.

다음주가 되면 혼자 광화문 교보문고에 나의 책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가 평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러 떠날 것이다.

조경규 선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던 20대의 나는 망설이다 그 인사를 전하지 못했지만, 이제 서른 살이 훨씬 넘은 이정연은 그에게 감사하다는 팬 메일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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