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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두부 같은 마음

by 이정연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상하기 쉽다. 여름날 바깥에 내놓은 두부 같달까. 정말 금방 상해버린다. 그리고 상한 두부와 같은 마음은 되돌릴 수 없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한다.




20년 지기 친구 A가 있었다. 나를 참 많이 좋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은연중에 나를 무시했다.

나의 가난을 이해하지 못했고, 병에 걸린 나를 깎아내렸다. 우리는 헤어졌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중산층 가정의 맏딸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딜 가나 모두의 유재석 같은 존재로, 그녀의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나는 쫄딱 망한 집 맏딸이 되었고, 그녀의 집은 점점 더 형편이 좋아졌다.

그녀는 나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늘 능력 있는 아버지와 집안의 부를 아무렇지 않게 과시했다. 내가 상처받을만한 식으로.

'우리 집 재산이라곤 겨우 집 세 채뿐이니 동수저나 되려나? 에휴.'

집이 쫄딱 망해서 집도 절도 없는 나의 가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신경한 말과 행동 앞에 서서히 마음은 벌어졌다.

나의 가난이 내 탓이 아니듯, 그녀가 부잣집 딸인 것이 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주 내 마음을 후벼 팠다. 내가 열등감이 지나치게 심해서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A만이 완전무결한 빌런이라 할 수 있을까. 나도 분명 누군가에게는 빌런인 것을.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정과 추억을 생각해서 참고 넘어가고. 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한계가 왔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자신에게 화나는 일이 있으면, 내게 소리를 질러댔다.

속상한 일이 있다고 해서 들어주고, 위로해 주면 소리를 질렀다. 지긋지긋했다. 나 자신도 한계인지라 그녀에게 심리상담을 권하기도 했다.


어느 날, 심장 관련 검사를 앞두고 투석을 하던 오전이었다. 그때도 그녀는 내게 짜증을 냈고, 그녀에 대한 나의 관심이 부족하다며 나를 탓했다. 당시의 나는 뇌종양 소견으로 이런저런 검사를 받던 중이었다. 나는 더는 참지 않았다. 그녀와 대거리를 했고, 결국 절연을 선언했다. 20년이 넘는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살고 봐야 했다.




매일 같이 연락하던 친구 B였다. 무척 가까웠지만, 그와 동시에 매우 멀기도 한 사이였다. 늘 자신이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것쯤은 참아줄 수 있었지만 '희귀병 걸린 불쌍한 애'라고 나를 지칭한 이후 그녀의 모든 행동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공통된 지인들이 많았는데, 지인들의 대부분이 내게 정하고 친절했다. 그것을 두고 그녀는 말했다. '희귀병 걸려서 불쌍하니까 사람들이 잘해주는 거'라고. 그녀와 친구인 내내, 나는 자주 주눅들었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희귀병에 걸린 불쌍한' 내게, 그녀는 잘해주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에도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전철을 타고 와 주기를 바랐고, 뒤에서 나를 욕했다. 하지만 이 얘기 듣고 너무 속상해말라. 나도 그녀가 퍽 싫었던지, 사람들이 그녀 욕을 할 때 한 마디씩 거들곤 했다. 작은 정연이는 참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와 과감히 이별했다. 더는 '희귀병 걸려서 불쌍한 이정연'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친구는 주변에 없다. 야호. 병팔이 아이돌이지만, 병자 취급은 지 않는다.




친구 C는 지나치게 쾌활했다. 사실 쾌활한 이들을 만나면, 기가 빨린다. 결이 비슷한 사람이 좋다. 그럼에도 나와 다른 그녀의 쾌활함이 좋았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마이너스 포인트가 있었다. 웃을 때마다 나를 때리는 것이었다. 내 왼팔은 사실 늘 보호받아야 한다. 남에게 보호해 달라고 할 수 없으니, 나는 늘 사람들과 왼팔이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나의 왼팔을 때려댔다. 때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너무 웃겨서. 그녀는 재미있다는 표현을, 때리는 것으로 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투석하는 팔이기 때문에 때리면 안 된다, 차라리 다른 곳을 때리라고 수차례 말해보았지만,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위태위태한 관계가 이어져오던 어느 날, 그녀와 인간관계의 힘듦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변의 이상한 지인 때문에 자책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연장자의 책임감 같은 것이 불뚝 솟아서 그녀를 위로하고자 했다.

"C,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나 또한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답니다. 절대로 C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러이러한 사람도 있었고요, 또 저러저러한 사람도 있었답니다."

그러자 C는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런 이상한 사람들 이야기 그만하세욧! 듣기만 해도 짜증 나요."

C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는데, 순식간에 C의 고함소리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물론 C에게 정신적 충격을 줄 만큼 나의 인간 경험이 험난하여 그녀를 괴롭힌 것이겠지만, 그래도 내게 소리를 지를 것까지야... 나는 그녀보다 나이도 꽤 많은데 말이지. 내가 이렇게 꼰대다.


이후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나의 마음은 두부처럼 연해서, 이미 상해버려서 되돌릴 수가 없었다. 고작 투석하는 팔 좀 때리는 습관 가지고, 소리 한 번 지른 것 가지고. 내가 생각해도 난 참 옹졸하지만, 인력으로는 되는 일이 아닌 것을 어쩐단 말인가.




모든 알파벳 친구들과의 절연 포인트는 단 하나였다. '저 사람이 이렇게 함부로 대할 만큼 내가 바닥인 사람인가?' 생각해 보니 내가 빚보증을 서 달라한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명백히 나쁜 사람, 나는 명백한 피해자. 이런 식으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나를 대하는 행동으로 인해 나의 자존감이 무너졌다. 내가 나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들을 곁에 두지 않아야 할 이유는 그것 하나로 분명했다.

지나간 많은 관계들을 생각한다. 알파벳 친구들 외에도 나를 더 함부로 대한 사람들은 많았다. 글로는 옮길 수 없을 만큼.

그러나 나도 살면서 몇몇 사람들에게 깔끔하게 손절당해 본 일들이 있다. 아마 그들에게 나도 알파벳 친구들과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상태에서 오만을 떨었을 수도 있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 상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주의를 여러 번 받았음에도 잘못된 행동을 고치지 못해 누군가의 마음에서 쫓겨났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누군가에게는 내가 꼴 보기 싫은 존재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깨어진 관계는 되돌릴 수가 없다. 상한 두부로는 그 어떤 음식도 만들 수가 없듯이. 나는 마음으로 알파벳 친구들 모두를 잘 보내주려 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스스로 반성하며 살아가려 한다.

이제 내 곁에는 내 마음을 상한 두부로 만드는 사람보다, 좋은 흙이 담긴 화분에 심긴 식물에 물을 주듯 싱싱한 마음을 갖게 하는 사람이 훨씬 많으므로.


오늘도 나를 싱싱하게 만들어준 당신에게 감히 건방진 조언 한 마디 하자면, 당신의 마음을 상한 두부로 만드는 사람과는 과감히 인연을 끊어라. 그가 이재용이라면 인연 끊기를 오랫동안 고민해야겠지만, 지금의 그들과 헤어져봤자 인생에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벼운 마음, 겁고 상쾌한 기분만이 남는다. 당신은 소중하고,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하고 나의 가치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은, 바람처럼 날려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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