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K교수님!
길고 긴 저의 하루가 끝났습니다. 교수님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만나셨나요.
처음 교수님을 만났던 25살의 저는, 겁이 나 잔뜩 웅크려 있었던 데다 많이 울기도 했던 것 같지만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교수님이 참 좋았어요. 교수님은 제가 좋아하는 진중하고 차분한 분이었거든요. 처음 침대차째로 끌려들어 갔던 그 시술실에서 오 선생님은 아주 드러내놓고 따스하셨고, 교수님은 조용히 따스하셨어요. 그날이 2012년 1월 17일입니다. 그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져올 줄, 25살의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어제 중재실 이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서점에 갔다가 제 책을 발견하고는 본래 사려던 책을 던져버리고 제 책을 샀다는 말씀, 기대보다 훨씬 잘 읽혀서 쉬지 않고 모두 읽으셨다는 말씀에 놀랐고 저의 책 출간 소식이 교수님에게까지 전해졌다는 이야기에 또 놀라고 말았습니다.
사실 교수님을 찾아뵈려고 했었습니다. 교수님과 제가 주인공인 긴 글이 한 편 있으니, 그 핑계로 교수님 얼굴을 뵈러 가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외래 진료에 인공신장실 회진까지 얼마나 바쁘실지 감히 짐작하기에, 이 작은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지요. 어느 시간대에 가야 잠깐이라도 뵐 수 있을까, 괜히 진료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어떻게 해야 교수님께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래 고민하였습니다.
병원 진료실에 들어가야 하니, 감기라도 걸려서 진료받으러 가야 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어제 말씀하셨어요. 교수님이 '사인한 책 가지고 당장 오라'고 하셨다고요. 감사합니다. 그 말씀에 저는 혼자 생각만 하던 일을, 당장 실천에 옮기려 합니다. 교수님께 드릴 책에 사인을 해서 가져갈까, 아니면 교수님 진료실에서 즉석에서 멋지게 사인을 해드릴까. 혼자 또 이런저런 상상을 해봅니다.
교수님과 헤어지던 2022년 7월에는요, 언제나 다시 뵐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인생이란 참 재미있지 않나요? 그 사이에 제가 이렇게 책을 출간해서, 그 책을 품에 안고 교수님을 뵈러 갈 날이 오다니요. 또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는지, 살아가는 일이 기대되지 않나요?
"이정연이! 책이 나왔으면 제일 먼저 교수님한테 뛰어 와야지, 왜 이제 온거야?"
교수님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공유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마음이 울렁거리는 밤입니다.
이제 교수님네 병원 위치를 정확히 검색하러 갑니다. 길 잃지 않고, 잘 찾아갈게요.
내일 만나요,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