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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by 이정연


솔직히 말하자면, 기쁨보다 슬픔이 많았다. 이토록 많은 무시와 멸시를 받을 수 있나 싶었던 그런 시기였다.


나를 무시하고 멸시했던 얼굴들을 떠올린다.

아마 그 얼굴들의 대부분은 나를 다시는 볼 수 없겠지.

그러나 몇몇 얼굴들은 내가 참 많이도 좋아했던 얼굴이었다. 무시와 멸시가 거듭되었음에도 울음을 꾹 참고,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었다. 마음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힘들었던 감정들이 제방 둑을 무너뜨리듯 그렇게 쏟아졌다. 오늘 사무실에 혼자여서 정말 다행이었다. 사무실 책상 밑에 쪼그려 앉아 서럽게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늘 K 부장님은 출근을 하지 않으셨고, M 부장님이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이어 거래처 분들이 오셨다. 나는 운 적 없는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울다가 웃는 일이 가능한 어른으로 사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늘 내가 한 번에 처리하기에는 어려운 일이 있는데, K 부장님이 그 일만은 나서서 처리해 주셔서 힘이 된다. 그런데 오늘은 잔뜩 울었던 데다, K 부장님이 계시지 않아서 혼자 일처리 할 생각에 조금 움츠러들었는데 오늘따라 업무량이 많지 않아서 혼자 으쌰으쌰 하였다. 몇 번에 나누어 처리하니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그리 힘이 들지 않았다. 오늘 내가 서럽게 운 것을 회사 전산망이 눈치라도 챈 듯이, 오늘따라 정말로 처리할 업무가 평소보다 적었다. 조금 위안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고 미워하여도, 적어도 기역자의 내 책상에서만큼은 미움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 또한 큰 위안이 되었다.


하루종일 굶었다. 서러움이 내장기관 가득 들어차서 배가 고프지 않다. 바쁜 업무를 마쳐두고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이 순간, 또 서러움이 올라온다.


인터넷에서 본 재미있는 농담을 생각한다. 이재용이나 최태원이 나를 미워하면 사는 것이 좀 고달파지겠지. 그러나 oo아. 너희들 몇이 나를 무시하고 괴롭힌다고 해서 딱히 큰일은 없어. 내 미간에 주름만 잡히겠지. 안 그러니? 퇴근까지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

그래. 이재용이 나를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그리고 나의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봤을 때, 나는 늘 고난에서 헤엄쳤다. 내 인생에 어렵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우주가 내게 다정했던 일은 거의 없다. 너희들이 나를 미워하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하면 돼.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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