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왜 신호등이 있는가

무질서 속의 질서

by 수수

멕시코에서 차를 렌트했다.
신호등이 대부분 없다. 눈치게임으로 차를 운전해야 하는 곳이다.
클락션도 자주 울리고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차들이 잘 굴러가고 막힘이 없다.
사고도 없다. 오히려 양보해줘서 감사함을 느낀다. 나도 양보를 하게 되며 묘한 성취감까지 느껴진다.

멕시코 도로 위에 있으면서 멕시코 운전자들이 부러워졌다. 아니 멕시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무언가가 통제하면 더욱이 삐뚤어지고 싶고, 신호를 무시하는 일도 발생한다. 하지만 매번 신호를 지키다가도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도로 위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이 정글 같은 지구에서 나는 왜 신호를 기다리고 왜 신호에만 움직여야 할까
클락션도 자유롭게 울리고 싶고, 지금 가고 있는 도로도 마음껏 달리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양보하며 성취감도 느끼며 내 인생을 살고 싶다. 인생 체증 같은 건 느끼고 싶지 않다.
빨간불이 켜져서 멈춰야 하고, 파란불이 켜졌을 땐 억지로라도 가야 한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

누군가가 우리를 강제적으로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평화롭게 내 삶을 개척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나에 대해 깊이 알아가며, 풍부한 내 삶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자본주의의 시장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굴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나는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거의 한 달을 지내고 있다.
여긴 거의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가 따로 없다. 어쩌다 있는 곳은 너무나도 열악하다.(도로가 파였거나, 벽돌이 튀어나왔거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있거나 한다.) 자전거가 다니는 도로 또한 따로 없다. 물론 차로의 자동차들 사이사이로 오토바이들이 고공 주행한다. 하지만 양보 정신과 인내심은 우리나라보다 강한 듯하다.
‘여긴 최고의 시장주의를 실현 중이구나’

마침 지금 대한민국은 부동산 규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엄청난 대출도, 엄청난 대출 규제도 양날의 검과 같다.
여기 치앙마이에서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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