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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Mar 27. 2021

농부가 되려고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합니다.

요즘 농부의 사생활 3탄

봄이 왔다. 계절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에서 -


  40년 농사를 지으신 아빠를 보면서 자랐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농부’가 되겠다는 생각을 1도 하지 않았다.

농부와 나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도시로 가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고 그렇게 비행을 8년 넘게 했다. 그리고 세계 여행을 2년 동안 다니고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농부’가 되었다. (왜 농부가 되었냐고 물으신다면 전전 편의 글을 봐주시길 바란다.)


 농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지 약 8개월이 되어간다. 마음먹으면 또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차근차근 아빠에게 현장 농사를 배우며,  틈틈이 이론적인 농사 공부를 하고 있다.


 처음엔 농업용어를 너무 모르니 (종자, 육종, 퇴비랑 비료의 차이 등) 이해를 돕고자 시작했던 농사 공부는 약 몇 개월 안에 끝나겠지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토양과 토지에 대해 공부를 하면 또 연결고리로 기름진 토양을 위해 쓰게 되는 비료를 위해 화학 공부해야 하고 화학을 공부하다 보면 식물에 대해 알아야 하기에 생명공학을 공부해야 하고 토양의 미생물을 공부하다 보면 무기물 유기물과 바이러스를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또 병충해 때문에 작물 보호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고 작물에 병이 생기게 되는 이유 때문에 환경과 기후를 공부해야 하고 그렇게 수확한 농산물을 팔려다 보니 마케팅을 공부하고 농장 운영을 위해 경영학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농산물을 팔다 보니 회계도 공부까지 손을 대고 그 어려운 세무까지 하다 보니 인건비가 눈에 들어오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시설 시스템과 농기계를 공부해야 농사를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게 된다. 농사를 하면 할수록 공부할게 계속 나온다. 세상에나.  이렇게 공부했다면 서울대라도 가지 않았을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한다.

읽은 책들

 ‘아, 농업은 고지식을 요하는 직업이구나’


무수한 세월 동안 농부로 일한 모든 농부님들에게 리스펙을 혼자 보냈다.

‘농부님들 리스펙 합니다’


 승무원으로 일했을 당시에는 고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노동을 했다. 물론 항공사 승무원은 갑작스러운 항공기 비상탈출이나 항공기 사고를 위해 탑승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런 일이 엄청난 확률로 없기 때문에, 대부분 승객들에게 밥을 챙겨주거나 음료를 챙겨주며 비행기 안에서 승객이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다. 이 일도 나에겐 중간 난이도의 막노동이라 생각하게 했는데, 농업은


엄청난 ‘중노동’이다!


이렇게 이쁜 두둑을 만드는 작업을 ‘밭 가꾸기’라고 부른다. 내가 고르게 한 두둑과 아빠가 고르게 한 두둑이  확연하게 보인다:-(




 8년 동안 일한 가닥이 있기에 몸 쓰는 것은 자신 있다면서 서서 일하는 것쯤이야! 라며 농사를 자신만만한 태도로 임했는데 이게 웬걸.


하루 종일 흙을 나르는 날도 하루 종일 비료포대를 나르는 날도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삽으로 땅을 파는 날도,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파종할 때도 수확을 할 때도 있고,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풀도 매고, 밭을 갈고, 하루 종일 서서 식재도 하며 앉았다 일어났다를 매일 한다.


아니 이건 또 단순한 막노동이 아니라 굉장히 조심스럽게 작물이 다치지 않게 풀을 매야하고 조심스럽게 열매를 다루며 수확 박스를 날라야 해서 어느 누가 부드러운 힘자랑을 한껏 하고 싶다면 여기 시골의 농장으로 오길 추천한다.

 


농사 = 고지식 + 중노동 + (부지런함 x 기다림)



머리도 쓰고 힘도 써야 하는 직업. 거기에 부지런함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직업이 농업이다.


아빠에게

‘하. 아빠~~ 시간이 너무 없어. 바빠서 영화조차 못 봐. 주말에도 일해야 하고 너무 시간이 없어. ‘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시간은 내가 내야 있는 거야. 새벽에 와서 일 끝내고 낮잠 한번 자고 일어나서 일하던지 공부하면 시간 많아’


맞는 말이라 부정하지 못했다. 그 순간 부지런함도 배워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왜 나는 누가 알려줘야 깨닫는 것인지 자책의 시간을 잠깐 가졌다.  저 한마디가 확 와 닿아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비닐하우스 일을 끝내고, 농산물 택배 작업과 마케팅 작업을 한다. 그리고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농사에 필요한 공부들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한다.



친환경농산물 포장을 지향한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부지런히 움직이고 열심히 일을 했는데 성과가 안 보인다고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면 안 된다. 소득이 없다고 금세 포기를 해버리는 사람과는 농사는 맞지 않는다. 농부는 부지런히 일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바로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짧게는 두 달에서부터 길게는 10년 넘게 기다려야 열매를 볼 수 있다.


내가 농부가 되어보니 알겠다. 농부로 오랫동안 사람들이 여느 성인군자처럼 기다림의 미학을 잘 아는지. 농부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평생 업으로 삼고 오랫동안 해온 농부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새삼 알겠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주변의 청년 농부들에게 항상 리스펙을 보낸다. 그리고 그분들이 수확한 농산물에 제값을 지불한다. 그리고 이런 소중한 농산물을 먹을 수 있게끔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그 노고에 무한 박수를 보낸다.



먹는 것도 가볍고 신선하게


고마움 투성이잖아!


 아직 초보 농부지만 훌륭한 농부가 되기 위해 오늘도 하나하나 알아가고 공부를 한다.

농사 공부를 하다 보니 흙의 고마움은 물론이거니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고마움까지 세상 통째로 고마움 투성이게 된다.

그냥 지나쳤던 햇볕이, 우리가 생각 없이 숨 쉬는 이 공기가, 가끔 오는 이 비가 얼마나 감사한지 여기 시골에서 느낀다.
농부가 되어보라고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이 지구에 살고 있음이, 나의 주변 모든 것들이 얼마나 고마움 투성이뿐임을.


농부가 되고 나서

생명을 보고 키우며, 자연을 지키는 농부로서의 삶이 고마움으로 꽉 차있다. 이건 고마움을 꾹꾹 담아 밀도가 높은 꽉 참이다.  



생명의 위대함





*충남 예산군에서 '삽다리더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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