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도 농사를 짓습니다.
오늘 2021년 첫날, 신년 1월 1일 하우스에 출근했다.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니. 너무 기쁘다. 오로지 나의 의지로 오는 이곳. 빨리 출근하고 싶어 옷을 주섬주섬 입게 하는 이 곳. 나의 작은 농장 하우스다.
충남 예산군에는 3일째, 눈이 오고 있다. 눈이 와도 나와 남편은 어김없이 하우스로 출근을 한다. 많이들 겨울은 농부에게 휴식의 시간이라 알려져 있지만, 하우스를 운영하는 농부들에게는 휴농기가 아니다. 열선을 깔든, 이불을 덮어주든, 시설하우스로 운영하든 온도와 습도를 유지시켜주면서 작물들을 키운다.
나의 하우스 한 동은 열선을 깔고 하우스 안에 두 터널을 만들었다. 그리고 비닐을 덮어주고, 또 거기에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자동화는 우리에게 아주 먼 이야기다. 아직 멋모르는 초보농이기에 하나하나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지 나의 힘으로 하고 싶다.
' 농사에 지원사업 많지 않아요?'
묻는 사람이 있다. 정말 많지만 처음부터 누군가의 돈으로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내 힘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알아야 하기 때문. 힘든 문제가 있을 때마다 답안지를 볼 순 없으니까.
'어찌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라고 물었을 때, '지원사업의 덕택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빠의 소신(?) 중 멀리해야 하는 돈 3가지를 말씀 해 주신적이 있는데,
1. 부모가 물려준 재산
2. 로또 당첨된 돈
3. 땅 투기로 갑자기 번 돈
이 세 가지 돈으로 자신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고 했다.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남편도 누구에게든 손 벌릴 생각은 없다. 오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우리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하자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기대는 것은 한 가지 있는데, 40년 동안 더덕 농사지은 아빠 농사 교육이다. 이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농사 배움의 선생님이 옆에 계시니까 말이다. 농사에 무지한 우리 둘은 아빠에게 하나 둘 배우고 있다. 나는 '종자'라는 말 조차 몰랐으니, 우리 아빠는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아빠에게 정신 차리라는 말은 인사와도 같다. 매일 듣는 소리.
우리 작은 농장은 더덕 전문으로 하는 농장으로 겨울에는 1년 근 더덕에 새싹을 키운 '새싹 더덕'을 농사짓는다. 그냥 뿌리 더덕보다 15배 영양분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아주 적은 돈으로 농사를 시작했고 아직 많은 수입이 없어 우리의 수준에 맞는 운영을 하고 있다.
오늘도 열려 있는 작은 농장은 나와 남편 농부가 있어 따뜻하다. 더덕들도 그 따뜻함을 아는지 무럭무럭 자라 나주고 있다. 그게 우리가 하우스 문을 여는 이유. 농장을 꾸리는 이유다. 농장에 오면 아주 무수한 생명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맹수도(아기 길고양이)- 더덕 새싹들도- 옆에 심은 시금치도 - 열무도 - 우리를 기다린다. 너희에게 든든한 우리가 있음을 알려주러 온다.
생명은 나에게 책임감을 준다. 책임감은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내가 쓸모 있는 인간임을 느끼게 한다. 무수한 생명들이 나를 기다린다. 나는 이 생명들을 위해 옷을 입는다. 밥을 먹는다. 그리고 기도를 한다.
너희가 나로 인해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너희들로 인해 자란다.
농부의 2021년 첫날.
나의 농작물과 작은 고양이로 인해 행복으로 채워진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