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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Feb 27. 2021

농부에게도 봄이 올까요?

이건 어르신이 힘들게 농사지으신 값이에요.


 

  농부가 되고 처음 맞는 봄이다.

한껏 기대하며 '봄' 녀석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오긴 왔다. 혹독했던 겨우내 우리 부부는 하우스에서 '새싹 더덕'을 키웠다. 아무도 모르는 작물을 키우고 판매를 하려니 앞이 캄캄했고 작년의 겨울은 몸보다 마음이 더 추운 겨울이었다.

그리고 봄이 오는 날과 함께 우리의 더덕의 판로도 조금씩 스르르 안정을 찾게 되었다. 우리 새싹 더덕을 찾아주는 고객과 꾸준히 납품하게 된 식당도 하나 생겼다.


젊은 사람들도 힘든데 고령 농부들은 얼마나 힘들까?

40년 동안 농사를 지은 아빠는 컴퓨터로 이메일 확인도 버거워한다. 온라인 판로를 쉽사리 할 수 없으니 헐값에 가락동시장이나 유통업자에게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인건비는 물론 농자재 값으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게 고령 농부들의 현실이다. 생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하지 않기에 농부들은 헐값이라도 한꺼번에 다 사가겠다는 업자들에게 팔아야 한다. 안 그랬다간 다 썩어 버려지니까 말이다.


 어르신의 더덕을 팔아주기로 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가끔 다른 농부 어르신들이 왔다 갔다 들르신다. 저번 주에 한 어르신이 찾아왔다. 아빠를 찾으러 왔다가 젊은이 두 명이 자리 잡고 있으니 신기한 모양이다. 신나게 노래를 틀어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농사일 한창인 이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이 어르신은 더덕을 아빠에게 배워 500평 정도 키우고 계신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아빠 말대로만 더덕 농사를 지으면 잘 키울 수 있을 꺼라 이야기하시며 허하 웃으신다.

어르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판로 걱정'이 크시다. 한숨만 푹푹 내쉬시다 자신의 농작물을 보러 간다며 손을 흔들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오늘은 더덕밭에서 '봄 더덕'을 캤다.

아빠의 더덕밭은 약 4000평 정도 된다. 인건비를 줄이고자 나와 나의 남편 그리고 아빠까지 셋이서 봄 더덕을 캤다. 수확하는 주중은 온몸에 알이 배기며 생활해야 한다. 쭈그려 더덕을 줍다 보면 달팽이집에 들어가 있는 달팽이가 된 기분이다.

 봄 더덕 수확 후 약 5분 거리의 '그'어르신네 더덕밭에 들르자는 아빠. 함께 어르신네 더덕밭에 갔다. 혼자 500평이나 되는 더덕밭에서 호미로 더덕을 캐고 계셨다. 하루 종일 캤다는데 한 두둑도 못 캐셨다. 아빠와 나, 남편까지 합세해 같이 더덕 수확을 도와드렸다. 아빠 더덕과 어르신 더덕의 공통점이 있다면 1년 근 더덕(이하 맛더덕)이라는 것. 맛더덕은 식용으로 너무나도 좋다. 달고 아삭하기 때문이다. 이 맛더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분만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의 농사 소신 중 하나가 힘든 지역민 농부들의 판로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특히 고령 농부들이었는데 '그'도움이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남편과 나는 통했다는 듯

'어르신, 저희가 더덕을 사 가고 싶어요. 그런데 여기에 있는 더덕을 다 가져가고 싶지만 저희도 여력이 되지 않아서요. 그래도 열심히 팔아볼게요. 오늘은 조금만 가져갈게요.'


우리가 가져간 더덕에 대해 제 값을 드리니


'아이고 꽁돈이 생겨버렸네'


'그게 왜 꽁돈이에요. 어르신이 힘들게 농사지으신 값이잖아요.'


그 말을 해주는 이가 처음이었는지 나의 말이 끝난 찰나 어르신의 눈이 커지고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리곤 이내 뒤돌아 섰다. 얇고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책맞게 나까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런 젊은이들만 있으면....'

하며 뒷말을 이어가시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농업의 현실에 대해 피 토하며 이야기를 나눴고 이 어르신의 농산물만은 꼭 책임지리라 외쳤다.


하도 제값을 못 받아봤던 기억 때문인지, 이젠 농부도 제값 받는 게 영 어색하고 죄짓는 기분이 드는 걸까?

농부가 농사에 대한 제 값 받는 게 그렇게도 눈이 휘둥그레 질 일일까?

내가 농부가 되어보니 알겠다. 우리나라 농부들의 생계와 노고를 진짜 내 살로 느낀다.



농부가 자신의 농작물을 제값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라며 마냥 기다리지 않겠다. 그 세상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그 세상은 우리 세대가 만들어야 한다. 그건 나에게도 속하는 말이다. 계속 개선하고 생각하며 좋은 방안을 찾겠다.

젊은 농부든 고령 농부든 모든 농부들이 당당하게 제값 받고 농산물을 판매하는 날이 머지않았길 기도하며 새벽까지 더덕 판매 상세페이지를 열심히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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