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서 만나는 장마철
여성에게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라는 질염이 성인이 되자 나에게도 찾아왔다. 생리기간이 아닌데도 팬티 속이 뭔가 축축한 기분. 화장실을 몇 번씩 갔다 와도 배출의 시원함이 없는 그 느낌은 비가 오지 않는 여름날의 땡볕에도 혹시나 창 밖에는 나 몰래 소나기가 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하였다.
혼자서만 장마철을 지내는 것 같은 그 증상이 질염이라는 것은 사실은 인터넷을 통해 처음 알았다. 팬티를 적시는 분비물이 일상생활 중에도 문득 느껴졌다. 찝찝함을 참다못해 몇 가지 키워드를 검색하다 보니 정말 많은 게시물에서 내가 질염을 앓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수많은 동지가 네이버 지식인을 비롯해 각종 블로그와 웹 사이트에 존재했다.
‘여름에는 날이 덥고 습해 곰팡이와 세균활동이 더욱 쉽게 증식할 수 있는데다 스트레스에 약한 현대인들은 여름철 고온의 환경에서도 면역력이 쉽게 약화될 수 있어 질내 상태의 균형이 쉽게 무너져 질염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
여성의 75%가 평생 적어도 한 번 이상 경험한다는데… …. 나랑 가장 친밀한 여성인 엄마에게서도 질염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 친한 친구들과도 이 질병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싶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던지 감기, 두통과 생리통에 대해서는 진통제도 주고받고, 속이 더부룩할 때는 소화제를 사다 주기도 했는데 질염에 대해서는 믿거나 말거나 한 민간요법 하나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대화가 없었다. 어쩌면 서로 누가 먼저 꺼내기 전까지는 굳이 먼저 이야기를 하기엔 민망하고 어려운 신체 부위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차라리 생리처럼 대놓고 빨간 피가 나오거나 생리대가 필요하면 모를까. 뭔가 애매한 느낌이 질염에는 있었다.
극단생활을 하던 여름에는 연일 계속되는 밤샘 작업으로 한참 컨디션이 안 좋다가 처음으로 하얀 치즈같이 덩어리진 냉을 만났다. 시린 느낌과 함께 묻어나온 분비물에 놀라 멍한 상태로 휴식시간 내내 화장실 칸에 앉아있었다. 간신히 휴대폰을 붙잡고 인터넷 속 의학정보를 검색하며 병원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며칠 미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곧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젊음을 믿고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용기를 내 방문한 병원에서 다행히 의사선생님은 크게 걱정할 것 없다며 간단하게 질 입구를 소독해주셨다. 혹시 모르니 균검사를 한 번 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는 푹 쉬라는 말을 덤으로 건네며 삼 일치 항생제를 처방해주셨다. 별일 아닌 듯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반응에 심각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닐까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정말 감기처럼 누구나 흔하게 걸릴 수 있지만 감기만큼 편하게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민망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병이었다.
병원에서 받아온 항생제를 띄엄띄엄 일주일 정도 먹었다. 양심상 술은 며칠 자제했다. 일찍 잠드는 건 여전히 어려웠지만, 늦게 일어나며 부족했을 지도 모를 잠을 채웠다. 사흘이 지나자 장마철 같은 기분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났다. 치료를 받았다는, 혹은 병원을 갔다 왔다는 사실에서 오는 플라세보 효과인가.
얼마 뒤 병원에서 문자가 한 통 왔다.
‘의뢰하신 검사결과 정상 나왔습니다. 6개월 ~ 1년 사이 정기검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D’
정말 별일이 아닌 것처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한동안 불편함이 느껴질 만큼 분비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겨울이 올 때까지 질염에 대한 관심을 잊고 살았는데.
‘겨울은 유독 질염이나 냄새, 냉대하 등으로 고민하는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계절이다. 겨울철 낮은 기온으로 인해 체온이 낮아지고 건조한 환경으로 인해 면역력이 저하되며 자궁이나 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다. 특히 겨울철에 자주 입게 되는 하체가 꽉 끼이는 바지, 레깅스 등은 질을 습하게 만들고 세균감염에 노출시키는 환경을 조성해 질염 발생률을 높일 수 있다… ….’
이것 참 어쩌면 좋을까. 사계절이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에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질염의 계절 여름과 겨울만 길어지고 있구나.
2 국민건강지식센터 건강칼럼, ‘여름철, 여성질환 주의보’, 2020.10.01,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180524&cid=63166&categoryId=51017#
3 ‘칸디다 질염’ 유발하는 겨울, 예방법은 ‘생활습관 개선’ 2020. 01. 09. 메디컬투데이, 김준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