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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Mar 19. 2020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ㄱr끔 난 과거의 나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는다...☆






대학교를 이제 막 마치고 2개월 간 짧은 사회생활을 겪었던 그 당시 나의 꿈은 최고의 축제-공연 기획자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생 대외활동 및 공모전 박람회인 '유니브엑스포'에서 공연 기획을 담당했고, 우연히 입사하게 된 첫 직장은 오프라인 이벤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BTL 이벤트 대행사였다. 큰 환상을 품고 있던 내 꿈은 현실 세계로 입장하고 얼마 되지 않아 보기 좋게 깨졌다.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는 '삼성'에 입사한 신입 사원들을 위한 '하계수련대회'라는 축제로 신입 사원들의 단합을 위해 매년 삼성에서 진행하는 전통적인 행사였다. 무주 덕유산 리조트의 널따란 잔디밭에 가로 세로 20걸음으로도 모자라는 넓은 무대, 갖가지 음향 장비, 콘솔, 수십 개의 몽골 텐트들이 각자의 위치에 설치됐고, 약 3일 간 그 잔디밭은 천 명가량의 삼성 신입사원으로 가득 메워졌다. 잔디밭과 무대 위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고, 가수들의 축하 무대를 즐기며 뛰어놀고, 마음껏 자신의 재량을 펼치는 삼성인들로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나, 무대 뒤편으로는 살얼음판 같은 냉기로 무르익었다. 한 톨의 실수도 납득할 수 없기에 초단위로 긴장감이 넘쳐흘렀고, 무대 위를 통솔하기 위한 PD님의 쩌렁쩌렁한 욕설들이 무전기 속에서 꽃피었다. 처음으로 경험해 본 무대 뒤 현장은 꽤나 고됐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터프했다.


대학 기간 내 꿈 꿨던 환상들이 보기 좋게 깨진 2012년 여름, 삼성하계수련대회의 피로를 채 풀기도 전에 제안해주신 두 번째 프로젝트를 거절하며 그렇게 나는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나이 청춘들이 으레 그렇듯 19박 20일간의 나 홀로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창 축제에 빠져 있을 때라 유럽 배낭여행의 주제는 '축제'였다. 스위스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아를의 거리 축제 등 가보고 싶은 축제들을 중점적으로 표시해두고, 여행 일정, 숙소 등을 결정했다. 가보고 싶었던 축제들을 직접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즐거웠지만, 내가 느낀 더 큰 즐거움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들이었다. 신선한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들에 여행의 묘미를 느꼈다.


그중 하나는 트라팔가 광장에 위치한 M&M's world였다. 그 당시 전 세계에서 오직 4곳(뉴욕, 라스베이거스, 올란도, 런던)에만 존재한다는 특별한 매장이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초콜릿 매장이었을 테고, 또 다른 여행자에게는 여행 후 지인에게 선물할 기념품을 구매하는 공간이었을, M&M's WORLD. 그곳이 나에게는 하나의 브랜드를 다양한 방법으로 마케팅하는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는 영감의 장소였다. 그 공간 안에는 앰엔앰즈 초콜릿 캐릭터를 이용한 각양각색의 굿즈-컬러별 인형, 옷, 머그컵, 열쇠고리, 액자, luggage tag 등등-들이 진열되어 사람들을 시선을 강탈했다. 건물은 총 4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어느 공간 하나 빈틈없이 하나의 브랜드가 4층짜리의 거대한 공간을 꽉 매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당시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구경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야말로 OSMU(One source Multi Use)가 진정 실현된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템 카테고리, 카테고리 별 다양한 디자인, 매장 진열방법, 캐릭터를 이용한 다양한 콘텐츠 하나하나를 생각하자, 그 세심하게 필요했을 기획자들의 다양한 고민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대중을 즐겁게 하고 콘텐츠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해내는 브랜드가 존재할까? 그 당시만 해도 라인프렌즈나 카카오처럼 한 브랜드의 캐릭터를 활용한 매장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뽀로로가 조금 더 성장한다면, 뽀로로 왕국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M&M's WORLD의 매출액은 알 수 없지만, 브랜드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이 곳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도 이러한 브랜드를, 브랜드를 통한 공간 창출을, 브랜드로부터의 콘텐츠 기획 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 그 당시 적어두었던 여행 기록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무려 8년 전, 패기 넘쳤던 25살의 내가 여행을 하며 이런 생각들을 했었구나 잊고만 지냈던 생각들을 발견하게 되어 깜짝 놀랐다. 좋아하는 일을 여행과 연결시키고, 여행을 통해 하고 싶은 일들을 발견하고, 발견한 인사이트를 통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던 그 시절 꼬맹이가 그냥 남처럼 낯설기도 하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기도 했다. 무지할수록 더 크리에이티브할 수 있다고 했던가. 어느새 7년을 넘게 한 분야에 일하고 있다 보니, 비슷한 아이디어들이 당연스럽게 반복될 때가 종종 있다. 통통 튀는 아이디어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기는커녕, 쥐어 짜내도 나올까 말까 한 시간들과 싸우며 괴로워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오늘 다시 그 여행의 기록을 펼쳐보고 있자니,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면서 재미있게 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보라고. 늘 초심, 그 무지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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