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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Apr 02. 2020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면 몰랐을 마음

그런 마음들을 만나기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나요






 이미 봄은 곁에 왔는데, 안녕하지 못하니 몸이 들썩이는 요즘. "떠나고 싶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2012년 홀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로, 부모님에게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도 걱정 없는 용감한 딸"이 되었고 나 역시 2016년부터는 연례행사라도 하듯 일 년에 최소 한 번씩은 꼭 혼자 여행을 떠났다. 치앙마이, 방콕, 끄라비, 교토, 속초, 춘천 등 혼자 떠나도 좋을 숙소를 찾게 되면 그 순간 바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혼자 여행을 떠나오면 사실, "나 도대체 왜 혼자 온 거지?"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 좋은 순간들도 분명히 많지만 혼자라서 서럽거나 무서운 순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서운 공포의 감정은 여행을 채 출발하기도 전부터 시작된다. 작년 방콕 여행 때는 새벽에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는 티겟을 끊어야 했다. 혼자 택시를 타려면 위험하지 않을까? 공항부터 숙소까지 40분을 가야 한다던데, 공항에서 직접 퍼블릭 택시를 잡아도 될까? 미리 클룩으로 택시를 예약하고 가야 할까? 철저하게 블로그로 사전 조사를 하고 또 하고를 반복하며 겨우 클룩을 예약했다. 예약을 한 뒤에도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방콕을 다녀온 친구들, 방콕 다녀온 후기를 남긴 블로거들을 찾는 족족 새벽에 도착하면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을 퍼붓고 다녔다. 새벽에 공항에 잘 도착하고도 심장은 조마조마했다. 숙소에 잘 도착할 수 있겠지, 택시는 숙소 쪽으로 잘 가고 있나, 지도를 일분 단위로 켜보았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짐을 푸는 순간, 온몸이 경직되었던 긴장감을 확 떨쳐낼 수 있었다.





 제주도에 혼자 여행을 갔을 때는 날이 흐렸던 늦은 오후쯤에 비자림에 혼자 산책을 하러 갔다. 해가 서서히 지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맞은편 정류장에는 20분 단위로 버스가 정류장을 멈추었다 갔는데, 도대체 왜 이쪽 정류장에만 버스가 오지 않느냐고 걱정하면서도 막차가 언제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결국 사람 하나 없는 정류장엔 어둠이 내려앉았다. 웬걸, 조명까지 하나 없는 깜깜한 도로였다니. 도로 양 옆에 쭈욱 펼쳐졌던 나무들도 어둠 속에 완벽하게 몸을 감추었고, 분명 나는 눈을 뜨고 있는데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암흑을 경험했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이 어둠 속에서 혹 내가 무슨 변을 당하더라도, 아무도 모른 채로 내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해괴망측한 생각까지 하게 됐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치앙마이에서는 람푸하우스라는 곳에 묵었었는데, 개미 나방 모기의 쓰리콤보 공격을 당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실컷 치앙마이의 라이프를 즐기다가 늘 늦은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기어 들어갔는데, 문 앞 밝은 조명엔 늘 나방 가족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나방이 한 마리라도 방으로 들어가면 어쩌지 노심초사하며 매일 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첩보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 일단 열쇠를 돌리고, 문을 열 준비를 하자. 손잡이를 돌리고는 1초 안에 방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준비됐지! 자, 하나, 둘, 셋! 끼익~쾅!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방에 들어와서도 틈새로 들어온 나방 없지?! 하며 매의 눈으로 방 안 곳곳을 살펴보았다. 이 모든 순간들이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무서움은 절반으로 줄었거나, 서로 얘기를 나누며 그 상황 자체를 희화화시킨다거나, 아님 아예 신경 조차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무섭고 두려움에 치를 떠는 여행을 경험하고서도, 도대체 왜 혼자 여행을 떠나는 거냐고 또 혼자 여행을 떠나겠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YES라고 대답할 것이다. 비롯 혼자라서 무섭고, 외롭고, 괴로운 순간들이 많이 있지만 혼자 여행을 떠나면 철저하게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내가 살던 세계와는 완벽하게 단절되어 나 스스로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내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곳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다.  완벽하게 기댈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 나 하나뿐이다.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나 스스로만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혼자 여행을 떠날 때는 꼭 새 노트 하나를 챙긴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 그 노트는 나의 여행 메이트가 되어준다. 새벽 비행에 두려워 떨었던 날도, 제주도의 암흑을 맛보았던 날도, 치앙마이 나방들과 사투를 벌인 날에도 나는 그 노트를 벗 삼아 모든 마음을 쏟아 냈다. 마치 친구와 함께 맥주 한 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듯이 말이다. 그 노트에는 힘들었던 시간들 뿐만 아니라, 여행에서 좋았던 순간들도 빠짐없이 담겨있다. 멋진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나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했을 때 즐거웠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좋은 풍경과 맛있는 음식은 되려 즐거움을 함께 누릴 소중한 사람이 곁에 없어 쉽게 외로워졌다. 혼자 여행의 기쁨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되려 소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길을 걷다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멍멍이의 뒤태를 발견했을 때라던지, 앗러이! 너무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 보이자 무표정이었던 사장님이 미소를 지었을 때라던지, 카페에서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거나 여행의 기억들을 정리했던 시간들, 이너프포라이프 숙소에서 나무 창문들을 모두 열어두고 마을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폭삭폭삭한 이불속에서 신선놀음을 했던 그런 시간들이었다. 








 치앙마이 여행에서는 특히 여유롭고 미소가 아름다운 치앙마이 사람들을 보는 걸 좋아했다. 눈만 마주쳐도 모든 사람들이 미소를 지어줬고, 장사를 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도 잠깐 비를 피하며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그들에게는 삶의 여유가 있었다.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온 후로 내 삶엔 '여유'라는 키워드가 생겼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여유'를 가지는 삶을 살자고 마음먹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질 때마다 치앙마이 사람들의 미소를 떠올린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마음들. 그런 마음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또다시 혼자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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