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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Apr 16. 2020

감정을 억누르는 멋없는 어른은 되지 않을 테야.

우리 함께 춤을 추며 자유롭게 꿈을 꾸는 할머니가 됩시다






참 멋없다, 어른이란 거.




작년 1월엔 마음이 많이 힘들었었다. 연초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이란 걸 한 뒤, 오랜만에 생경한 아픔을 경험했다. 차오르는 슬픔을 꾹꾹 억누르며 회사에 나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을 했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그저 멍하니 가만히 있었다가는 억누르고 있는 마음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내렸을 테니까. 의식적으로 최대한 내 몸과 마음을 더 바삐 움직였다. 있는 대로 약속을 잡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더 일에 몰입했다. 그런대로 잘 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맥주 한 잔을 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와락, 그리움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혼자 외로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너무 보고 싶은데 왜 내가 참아야 하는 거지? 마음에게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보고 싶으면 당장 집 앞에 찾아가고,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바로 전화를 걸어 뻔뻔하게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했다고 얘기하고, 뭐하는지 궁금하면 바로 문자를 보냈던,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때의 난 그 억척스러운 감정들을 무섭도록 잘 참아내고 있었다. 스스로가 무서울 만큼.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보고 싶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열정적으로 말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다니. 아무래도 어른이 된다는 건 참 멋없는 일인 것 같다고.





어린 시절 우리는 감정표현에 충실하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거침없이 표현할 줄 안다.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분명하게 거른다.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감정표현을 하며 살고 있을까?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내가 먹은 나이만큼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큼 프로페셔널해야 하기 때문에,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우리 안에 있는 감정 세포들과 하고 싶다는 마음들을 자주 마음속으로 더 깊이 억누른다. 이렇게 참고 억누르며 살다가 결국 감정이라는 것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점점 하고 싶은 것들이 영영 사라지게 될까 봐 무섭다.




당신의 감정,

오늘도 잘 억누르고 사셨습니까?




오늘 유튜브를 보다가 알고리즘에 의해 유월이라는 영상을 보게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다니는 베프(BEFF)라는 분이 만든 졸업작품이라고 올린 그 영상 인트로에는 비트에 맞춰 눈동자가 춤을 추는 초등학생 유월이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보인다.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는 소년 유월이로 인해 초등학교 전체가 댄스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질서에 엄격한 선생님들이 유월이를 잡기 위해 추격하지만 결국 선생님, 그리고 동네 시민들 모두 유월이의 댄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학교로 돌아온 유월이와 춤을 추던 친구들, 그리고 담임 선생님 혜림은 다 함께 운동장으로 나가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춤을 춘다. 청량한 탄산음료 한 모금을 마신 것처럼 엉켜있던 마음들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내 꿈은 호기심 많은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할머니가 되어도 파란 하늘에 감탄하고, 떨어지는 꽃잎에 깔깔 웃고, 지는 노을을 보며 눈물 흘리고 싶다. 평생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이뤄가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현실에 억압되지 않고 함께 많이 웃고 각자가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정말로 이 영화처럼 우리의 일상에 댄스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지옥철에서 부딪혀 인상을 찡그리는 대신 춤을 추고, 힘겨운 아침 출근 발걸음을 탭댄스를 추며 흥겹게 한 발씩 내딛는다면? 우리는 조금 더 웃고 자유롭게 살게 될 수 있을까? :-) 오늘 밤은 엉뚱한 상상을 하며 잠에 들 것 같다.





<유월> 못 보신 분이 있다면

꼭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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