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시 Apr 23. 2020

달빛 속에서는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여

나라는 존재를 품어주는 사랑 안에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세상의 시선에 개의치 마. 네 갈길을 가.

라고 믿고 그대로 따르고 싶지만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태풍을 뚫고 억척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고되고 고통스럽다. 이해받고자 하는 상대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더욱이 그렇다. 일반적인 삶에서 궤도를 벗어나 소수의 삶을 산다는 것. 평범하지 않은, 별난 삶으로 취급받는다는 것. 그게 과연 성소수자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오늘 본 영화 <문라이트>를 통해 그들의 삶과 내 삶이 맞닿아있다고 느꼈다.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이제 널 그렇게 불러야겠다.
블루.






(※ '문라이트' 영화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견딘다는 건


푸른빛이 포옥 감싸 안은 어린아이의 뒷모습에 사로잡혀 보게 된 영화 <문라이트>는 성소수자인 흑인 소년 샤이론의 성장 이야기다. 미국 마이애미의 빈민가에 사는 샤이론은 작은 체구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리틀 Little'이라는 별명으로 따돌림을 당한다. 언어폭력과 괴롭힘 등으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따뜻한 품으로 안아줄 부모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샤이론에게 아빠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며, 엄마는 마약중독자다. 밤만 되면 엄마는 시뻘건 불빛이 비치는 방안에 들어간다. 그 방에서 마약을 하고 나온 엄마는 때로는 '이 집에서 나가!'라며 소리치거나, 투명인간이라도 된 듯 샤이론을 방치해 버린다. 어린아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가혹한 세상.


홀로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던 샤이론의 삶에 손 내밀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후안과 테레사, 그리고 그의 친구 케빈. 어느 날, 샤이론은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도망치다 숨은 장소에서 마약거래상 후안을 맞닥드린다. 그곳은 바로 후안의 마약 창고였던 것. 두려움의 끈을 놓지 못하며 불안한 눈빛의 샤이론에게 후안과 그의 여자 친구 테레사는 밥을 주고, 언제든지 와서 자도 된다는 말과 함께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다. 그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샤이론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고, 그동안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그의 진짜 이름-샤이론-을 불러준 유일한 사람들이다. 늦은 밤 뒷골목에서 마약 거래 구역을 관리하는 거친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이다. 9살의 어린 샤이론에게 그 부부가 없었다면 샤이론은 그 시절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샤이론과 후안 ⓒ 네이버 영화
샤이론과 후안 ⓒ 네이버 영화
샤이론과 테레사 ⓒ 네이버 영화




친구들의 괴롭힘 속에서도 그의 곁에 다가와주는 유일한 친구인 케빈은 샤이론과 체구는 비슷하지만 자신감이 늘 넘친다. 9살에서 16살로 성장한 그들은 어느 날 바닷가 앞에서 대화를 나누다 생각지 못한 감정에 이끌려 애틋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외로웠던 샤이론의 인생에, 그리고 그의 마음에 풍덩 뛰어들어온 유일한 사람. 하지만, 친구들의 놀림에 케빈은 샤이론을 배신하게 되고 상처를 입은 샤이론은 그를 괴롭힌 친구들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폭력을 휘두르고는 소년원에 가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20대 중반이 된 샤이론은 180도 변신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누구보다 마른 체형이었던 그는 후안처럼 누구도 건들 수 없을 것 같은 강인한 외모로 변신한 마약거래상이 되었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잘 지내? 나야. 케빈" 오랜 첫사랑을 마주하듯 동공 지진이 되어버린 샤이론은 케빈을 만나러 간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180도 다른 모습으로 케빈 앞에 나타났지만 마음만은 그때 그 시절의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있다. "날 만져준 사람은 너 하나뿐이야. You're the only one" 유일하게 자신의 몸을 만져주고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준 케빈 또한 그의 삶에 얼마나 커다란 기둥이었을까?


케빈과 샤이론 ⓒ 네이버 영화






나라는 존재를 품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랑 안에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낼

용기도 생겨난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내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흑인, 성소수자의 삶을 살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엄마에게까지도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샤이론이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를 품어주고 이해해주는 후안, 테레사, 그리고 케빈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최근에 자유라는 키워드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요 며칠간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보다 더 먼저 선행이 되어야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아름다운 영화였다.






뱀발.

샤이론의 섬세한 감정선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샤이론이 된 것처럼 외로운 기분이 많이 들었어요. 영상미, 음악, 연기 모든 면에서 아름답다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혹시 보신 분이 계시다면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감상평을 댓글로 달아주신다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을 억누르는 멋없는 어른은 되지 않을 테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