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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Aug 21. 2018

결코 가볍지 않은

사진 한 장의 미학






보고 있지 않아도

찬찬히,

내 얼굴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는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어떤 빛이 예쁠까,

이 사람의 가장 예쁜 곳은 어디일까,

그저 느껴지는 시선만으로도

아 이 사람은 참 섬세하다 생각했다.







내 취미는 사진 찍기.

순간을 영원으로 기록해주는 매력에 이끌려 한 장, 두장 찍다 보니 잘 찍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속에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에는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에 따라 사진을 찍는 스타일은 달랐으나, 짧은 시간 내에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규동을 만난 이후로 내 생각은 달라졌다. 그저 빠른 시간 안에 찍어내는 것이 사진을 가장 잘 찍는 방법은 아님을. 그는 가장 좋은 빛, 좋은 순간, 좋은 구도를 꽤 오랫동안 관찰하다가 원하는 순간이 찾아 왔을 때가 되어서야 셔터를 누른다. “잠깐만~ 둘~셋!” 차분하고 나즈막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지금이다 싶을 때 조용히 카메라를 들었다.







규동을 만나기 몇 달 전, 어느 사진 동호회 모임을 간 적이 있었다. 열댓명 되는 사람들이 낯선 공기와 거친 비를 뚫고 멋진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울 한복판에 모였다. 모임장을 따라 멋진 구도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기도 했다. 출사 후, 카톡방으로 우린 서로의 사진을 공유했다. 그 사진 속엔 인스타에서 매일 볼법한 비슷한 하늘, 풍경, 카페 등의 사진이 남았다. 카톡에서의 대화는 인스타 사이즈는 어떻게, 보정은 어떻게 등등 사진 속 담긴 메시지보다 예쁜 이미지를 통해 더 많은 인스타 팔로워를 모으기에 급급해 보였다. 물론 나도 그 무리 중 하나였지만, 사진이란 무엇일까 허무해졌다.




규동을 만난 건 그 즈음이었다. 모두가 기계처럼 찍어대는 똑같은 사진에 환멸이 날 그 즈음. 그를 알게된 건 <고시텔>이라는 작품 덕분이었다. 고시텔에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 그의 사진 속엔 겨우 몸만 뉘일 수 있는 작은 공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엿볼 수 있었다. 작은 방 안에서 오이 마사지를 하거나 티비를 보고, 좁다란 복도 한 켠에서 무용을 하거나, 작은 식탁에서 라면을 먹는 등 힘들수도 있을 현실 속에서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어떤 아름다운 절경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을 만난 기분이었다.




c. simkyudong
c. simkyudong




규동은 그 삶을 직접 보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일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고시텔에서 생활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작은 사진 한 장에 그의 시간, 노력, 피와 땀이 섞여있었다. 그는 결코 사진 한 장의 의미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어느샌가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리앉았다.

“와 지금 분위기 진짜 예쁘다. 마치 한 여름의 새벽빛 같아.”

푸르스름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한 여름의 새벽빛이라니. 생각지 못했던 그의 말에 한 순간에 주변은 한 여름의 새벽으로 물들었다.




한 여름날의 새벽빛을 아는 사람.

꼼꼼한 시선으로 최선의 미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섬세한 시선에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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