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시 Nov 13. 2018

가을엔 모과차를 마셔요

아빠는 지금 모과차 홀릭중






아빠는 요즘 모과차에 푹 빠져계신다. 몇일 전부터 내게도 아침저녁으로 모과차를 권했다. 요새 식탁 앞에만 앉으면 요상한 냄새가 난다 했는데, 알고 보니 식탁 한 귀퉁이 손수건 아래에 무시무시한 덩치의 모과가 6개나 쌓여있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밥을 먹는지 모과를 먹는지 모를 정도로 냄새는 강렬했다. 상큼한 것 같다가도, 시큼한 것 같았고 그 향이 좋은 것 같다가도 싫었다. 냄새가 너무 강렬하다며 툴툴댔지만 아빠는 좋기만 하구만, 하시며 신발장에도 하나를 놓아두셨다. 이제는 출퇴근 길도 모과향이 가장 먼저 반겨준다. 온 집안에 모과향이 폴폴 퍼진다.




한 일주일 전엔가 감기에 걸렸다. 콜록콜록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방 안에서 콜록대고 있자니 아빠는 “딸~” 하고 부르시며 슬쩍 핸드폰을 내미셨다. 그 화면 속에 보이던 아빠의 은밀한 마음 속 글자들. “기관지와 기침에 좋은 모과차(그러니 지금 당장 마셔라)” 네이버에서 모과차에 대한 효능을 찾아보시고는 내게 보여주신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 아빠는 단내쓴내 폴폴나는 모과차를 코 앞으로 들이밀었다. 몇일 전 모과차를 처음 마셨을 때 너무 시큼했던 경험 때문에 아빠! 다신 안 먹을래! 단호하게 했던 말은 아빠의 반대편 귀로 흘러나갔는지 이번에는 안 쓰게 꿀을 타주시겠다며 단맛으로 유혹하신다. 도대체 저 모과는 어디서 나서 나를 괴롭히나.




“아빠 도대체 모과는 어디서 가져온거야? 산거야?”

“아니 아빠가 주워온거야. 엄청 운좋았지! 저기 우리 집 공원 앞에 있잖아. 거기 고개 들고 나무 위를 쳐다보면 모과가 많이 열려있어. 집에 오는데 모과가 떨어져 있지 뭐야! 지금껏 한 번도 주워본 적 없는데 올해는 6개나 주웠어!”




아빠는 신이 나서 한 영웅이 세계를 구한 것 만큼이나 위풍당당한 목소리로 모과담을 들려주셨다. 아빠의 얘기를 듣는 새에 나는 나도 모르게 아빠가 타주신 모과차를 손에 들고 한입씩 한입씩 목구멍으로 구겨넣었다. 아빠가 몇년간 나무 위로 올려다보기만 했던 모과를 주워온 것이라니, 너무 즐거워보이는 아빠를 보니 조금 맛이 있는 것도 같다. 아빠는 다시 또 검색에 돌입했다. 모과차 절이는 방법. 당분간은 설탕에 절여진, 아빠의 사랑 가득 담긴 모과차를 회사에까지 가져가서 마셔야 할지도 모르겠다. 힘들면 숨이라도 참고 마셔야지. 모과차도 모과찬데, 매일 출퇴근길에 모과 나무 위를 휘휘 둘러봤을 아빠를 상상하니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너무 귀엽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행복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