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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Nov 27. 2019

낡은 마음도 다시 반짝일 수 있나요



누군가 마시다 간 커피잔, 이제 아무도 발걸음 하지 않는 폐점된 매장, 구겨지고 깨져 빛이 바래진 것들, 더 이상 찾는 사람 없이 자기 마음대로 나뒹굴거나 먼지만 쌓여가는 물건들, 너덜너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

길을 걷다가 혹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다가도 나는, 줄곧 쓰임을 다한 것들에 시선을 둔다. 제 할 일을 다하고 결국에는 헐거나 닳아버리고 만 것들. 케케묵은 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동료들과 서로를 다독이며 버려질 일만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언젠가는 그것들을 보며 낡아버린 내 마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깨끗한 도화지 같았던 마음에 무수한 실패와 슬픔, 아픔 같은 것들을 그려 넣고는 아무리 지우고 지워도 결국 남아버린 자국들 때문에 아팠던 마음에 대해서. 그런 자국들이 쌓이고 쌓여 점점 순수함이라거나 천진난만함, 내 가능성에 대한 희망 같은 감정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아니, 혹시 그런 감정을 잃어가는 중인 건 아닐까, 하다가 이미 무뎌져 버린 마음을 마주하게 될 때면 때 묻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푸릇함이 이내 그리워지곤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때쯤,  레트로가 유행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세월을 폭탄으로 맞은 구석기시대 유물 같은 것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을 되려 힙스터라 부르기 시작했고, 어두운 창고 속에 잠들어 있던 물건들은 세월의 흔적이 더 많이 묻어날수록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꺼진 불씨도 다시 보자고 했던가. 낡아버린 것들도 그 나름의 또 다른 쓰임이 있었다.

처음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한다는 건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낡아버린 것들이 다시 새로운 삶을 가질 수 있도록 돌아봐 주는 것이 아닐까? 점점 바래져 가는 내 마음도 다시 반짝일 수 있게 보듬어주고 사랑해주는 관심이 필요하다.

변함없이 꿈꾸며 호기심 많은 할머니가 될 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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