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걷는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면서 걷는다. 때로는 이치코의 엄마처럼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원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처음에 그린 원에서 비껴 나고 있었다는 것을.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리며 걷고 있었다는 것을.
원에는 출구가 없지만, 나선에는 출구가 있다. 직선으로 걷는 것보다는 확실히 느릴 것이다. 하지만 직선으로 걷지 않기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더 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고 대부분의 것들에 만족한다.
- 한수희,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