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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Jan 01. 2020

<불안했던 날들의 기록> 1년 후 이야기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2019년 초,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지원해 보겠다는 핑계를 발판 삼아 지난 몇 년 간 고뇌했던 마음들을 모두 정리하기 위해 <불안한 날들의 기록>을 15편으로 엮어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역시나, 브런치북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승패에 상관없이 짧은 기간 동안 15편의 글을 썼던 기억은 내 안의 작은 성취감을 강렬하게 남겨주었다. 마감 기한 안에 제출해 보겠다며 매일 같이 카페에 앉아 있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얼마 전에는 우연히 에버노트에 빼곡하게 적힌 그 당시 고민의 흔적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이렇게 열심히 글을 썼었구나 나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그 당시 나는 글쓰기에 완벽하게 몰입되어 있었다.


그 시간들 덕분에 <불안한 날들의 기록>을 읽으러 종종 사람들이 찾아온다. 아마도, 광고 업계에 있는 AE분들이지 않을까 싶다. 퇴사 얘기, 혹은 AE로서 힘들었던 기록들을 읽고 가시는 것 같았다.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오로지 나의 글로서 구독자 100명을 채우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야금야금 한 사람씩 생기더니 어느덧 일 년 반 만에 99명의 구독자가 생겼다. 뭐, 숫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99명의 구독자분들이 내 글을 모두 다 읽어주신 것도 아니겠지만서도 올 초에 성취감을 느꼈던 것처럼 더 열심히 써보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됐다고 해야 할까.


글을 쓴 지 딱 1년, 연재 글 이후로 브런치에 글을 올린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동안 다양한 형태로 많은 기록들을 남기며 지냈다. 배달의 민족 승희님과의 인터뷰가 시발점이 되어 나도 흘러가는 기억을 붙잡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신정철 작가님의 <메모 습관의 힘>을 읽으며 나만의 메모 습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올라이트 A5 노트는 나의 인마이백 필수템이 되었고, 올해는 아예 1 year diary에 올 한 해를 기록해볼 생각이다. 또한 신정철 작가님이 알려주신 메모 리딩을 통해 책 혹은 기사 속에서 나의 생각을 끄집어내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보려 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브랜드적인 삶을 살기 위한 커뮤니티 모임 <Be my B;>에서 만난 많은 브랜드 이야기들은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내 곁에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순간들을 잊지 않고 남기기 위해 새로운 필름카메라를 들이고 팔기도 했다.


2019년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형태의 인생들을 마주했던 한 해였다. 스페이스오디티 정혜윤 작가님, 스트릿포토그래퍼 임수민 작가님, 스페이스오디티 요원들, 얼마 전 강연을 들었던 책바 정인성 대표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마이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까지. 약 2년 여의 시간 동안 회사 내에서의 업무에만 함몰되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보려는 의지 없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땅에 가라앉아 버렸던 지난날들이 자주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을 난 헛되다 생각지는 않는다.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순간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힘든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마주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회사 내부적으로 업무에만 치중하기보다, 회사 밖의 사람들을 만나 제3의 시점으로 내 위치를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걷는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면서 걷는다. 때로는 이치코의 엄마처럼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원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처음에 그린 원에서 비껴 나고 있었다는 것을.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리며 걷고 있었다는 것을.

원에는 출구가 없지만, 나선에는 출구가 있다. 직선으로 걷는 것보다는 확실히 느릴 것이다. 하지만 직선으로 걷지 않기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더 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고 대부분의 것들에 만족한다.
- 한수희,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중에서


며칠 전, 애정 하는 한수희 작가님의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라는 책을 읽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걷고 있다. 그녀의 글처럼 나는 직선이 아닌 나선으로 걷기에 확실히 느릴 것이지만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들을 경험할 것이다. 그 일들이 모여 언젠가 선을 이루게 되는 날이 올 것임을 난 여전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금 더디더라도 나선으로 걷는 이들이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다면, 나선으로 걷는 자신의 발걸음에 믿음을 가지고 더 많은 일들을 경험해서 후회하지 않는 2020년을 보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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