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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Feb 04. 2020

[남산의 부장들]:김재규를 그렇게 다루지 않았더라면

토사구팽 정치는 몰락한다


인간은 타자의 인정을 통해 자긍심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면서 타자를 쉽사리 인정하려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타자를 무시하거나 부정함으로써 상대방의 분노를 일으킨다. 사람들의 인정 욕망이 서로 부딪히며 ‘인정 투쟁’(recognition struggle)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가 헤겔의 이론으로부터 발전시킨 인정 투쟁이란 개념은 정치를 비롯한 사회의 여러 갈등의 원인을 설명해준다.


<남산의 부장들>은 당시 정치인들 사이의 인정 투쟁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영화에서 박 전 부장, 김 부장, 곽 경호실장은 저마다 권력의 정점이었던 박통의 인정을 얻고 자기를 보존하려고 애를 쓰면서 동시에 타자를 부정하고 밀어낸다. 그 투쟁은 적절히 해소되지 못한 채 결국 10.26 사태를 낳는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인정 투쟁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를 파국에 치닫게 만드는 요소인지, 아니면 정치를 건강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는지,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리더는 얼마나 정밀한 정치공학적 접근을 세팅해야 인정 투쟁을 정치에 건강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영화만 놓고 보면, 박통이 몰락한 배경으로 자신의 ‘임자‘들을 다스리는 통치술이 부족했던 걸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미국의 압박이나 거리의 민주화 요구도 큰 이유였다. 하지만, 독재 권력을 지탱해주는 부하들 간의 인정 투쟁을 균형 있게 중재하지 못하고 토사구팽식으로 부하를 다뤄버린 것은 박통의 과오가 아닐 수가 없다. 인정 투쟁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아랫사람들의 불안감을 리더가 늘 세심하게 읽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뿐 아니라 사업에서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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