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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Feb 04. 2020

[사마에게]:사마, 이 영화를 네게 바친다


미사일 한 방에 건물이 완파된다. 길이며 강어귀엔 주검들이 날것 그대로 널려있다. 반군, 주민 구분 없이 이뤄진 정부군의 무차별 폭격에 사람들의 팔다리는 뚝뚝 떨어져 나가고, 지역 병원은 실려 온 사람들의 피와 비명과 폭연이 뒤섞여 지옥도가 따로 없다. 어린 아이들은 고막을 찢는 폭발음에도 귀가 멀어 버린 듯 울지 않는다. 폭음이 생활소음이 된 탓이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버티며 저항한다. 그곳은 삶의 터전이자 민주화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민주 혁명의 요구를, 아사드 독재 정권은 대규모 학살로 응징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지금까지 3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영화 <사마에게>의 와드 감독은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5년씩 목숨을 걸고 카메라를 든다. 딸 ‘사마’에게 언젠가 푸른 시리아 땅을 되돌려주고 싶어서다. 정부군-반군 사이의 충돌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시아파-수니파 간 종교분쟁 그리고 주변국 간의 대리전으로까지 확대됐다. 발생한 시리아 난민 숫자만 400만 명 이상이다. 2015년 터키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쿠르디도 그중 한 명이다.


와드 알 카팁 감독

그녀가 기록한 5년간의 장면엔 현대사의 여러 순간들이 겹친다. 구호를 외치며 저항하는 시위대의 모습에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87년 6월 서울 시민들의 모습이, 시리아 정부군과 동맹군의 무력진압 장면에선 천안문 사태가 연상된다. 민주주의가 이미 정착된 국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그다지 뼈저리게는 느끼지 못할 인간의 흉포성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굳어진 의식을 뒤흔든다. 영화 속 순간들은 와드 감독에겐 삶을 다 내건 투쟁이자 고통이었겠지만, 글로벌 방송사에겐 흥밋거리가 안될 이슈로, 풍요로운 선진국 시민들에겐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은 고통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고통에 있어서도 이기적이다. 내가 겪는 고통도 큰데 타인의 고통을 돌아볼 여력이 도대체 어딨느냐는 우리 속의 이기심이 그걸 증명한다. 시리아라니, 나와는 너무 거리가 멀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대부분, 아니 거의 모두가, 자신의 좁은 세계 속 고통에만 함몰돼 타인의 비참함을 균형 있게 관찰하려 하지 않거나 혹은 타인의 고통에 있어서는 감각 불능자가 되어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 것이 아닌 고통이 자신의 삶을 침범하는 것을 거부하며, 일말의 반성조차 없는 삶 속에 유폐된 채 패턴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의 축복이라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바로, 그, 타인의 고통에 대한 현대인들의 무뎌진 의식이 난민에 대한 혐오와 고통에 대한 몰이해를 생산해낸다. 그러니 시리아 내전에서 사람들이 총폭탄에 떼죽음 당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큰 비극이 사실은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는 고통에 대한 이기심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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