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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Feb 04. 2020

[피아니스트의 전설]: 죽음을 통해 자유를 완성하다니


“피아노는 시작과 끝이 있지. 어떤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래서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지. 배에서 막 내리려 했을 때 수백만 개의 건반이 보였어. 너무 많아서 그걸론 연주할 수가 없어. 피아노를 잘못 선택한 거지. 그건 신이나 가능한 거야.”


이 영화는 삽입된 곡들도 아름답지만,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인상적이다 못해 황홀하다. 자유의 의미를 이처럼 예술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있었던가. 곧 폭파될 폐선박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재즈 피아니스트 ‘나인틴 헌드레드’의 모습과 그를 뒤로한 채 나오는 맥스의 모습이 교차되는 장면에서는 마치 감독이 ‘무엇이 진짜 자유로운 삶인가?’를 질문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맥스가 흘리는 눈물은 단지 친구를 잃게 된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를 외치면서도 온갖 욕망에 구속되어버린 사람들로 가득한 미국으로 그 또한 대책 없이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슬퍼서 흘리는 눈물처럼 느껴진다. 반면 나인틴 헌드레드는 그런 미국이 주는 가짜 자유를 거부하고 마침내 폭발하는 배와 함께 소멸되는 길을 선택한다. 살아 생전 재즈를 연주하며 그가 누린 자유는 그의 자발적인 죽음을 통해 온전하게 보존되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 자유를 완성하다니! 이런 예술가적인 죽음이 또 있을까. 이 영화는 꼭 다시 한번 보면서 여운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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