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은 남매 관계가 아니다. 피도 안 섞였고 생활패턴, 습관, 취향 모두 다르다. 보통 사랑하면 닮는다고들 말하지만 태생적인 다름마저 사랑으로 극복하기는 어렵다. 바로 이 다름 때문에 연인 관계엔 늘 긴장과 균열이 발생한다. 연인들은 달라서 사랑하고, 달라서 싸운다. 그러다 다름을 극복하지 못한 연인은 서로에 대한 안좋은 기억만 남기고서 헤어지고 만다. 그리고 '두번 다시 사랑 안 해'라고 마음문을 걸어잠그지만 어느새 또 우리는 사랑을 하고 다시 연인이 된다. 나와 많은 면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서 말이다.
<이터널 선샤인>은 다름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진 연인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운 뒤 다시 만나는 이야기로 구성된 영화다. 조엘(짐 캐리 분)과 클렘(케이트 윈슬렛 분)은 극과 극의 성격으로 인해 서로에게 끌려 연인이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싸운다. 말수며, 성격이며, 미래에 대한 계획 등 모든 것이 다르다 보니 갈등이 일상일 수밖에 없다. 어느날 밤 조엘의 망언으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되고, 클렘과 조엘 모두 '라쿠나 사'에서 괴로움을 잊고자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그러나 조엘은 막상 기억을 지우려니 클렘과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너무 달랐지만 그 다름이 둘을 사랑으로 충만하게 했었고, 서로와 함께했던 옛 시간을 추억으로 만들어주었던 것. 다름이란 양날의 검과 같다는 감독의 생각이 녹아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우리는 행복하면서도 불행하다는 거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웠지만 운명처럼 다시 서로에게 끌린다. 기억이 지워지기 전 녹음했던 테이프를 통해 서로가 연인이었고 너무나 달랐다는 점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다시 연인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이렇게 말한다.
클렘: 난 내 생각만 하며 사는 막되먹은 여자야. 난 완벽하지 않아.
조엘: 널 싫어할 만한 어떤 것도 네게서 발견하지 못하겠어.
클렘: 아니, 곧 발견하게 될 거야. 그리고 난 곧 네가 지겨워질 거고 갇힌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거야.
조엘: 상관없어.
클렘: 그래 (헛웃음)
이 영화는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울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끝을 맺는다. 사랑이 두 연인에게 고유한 것이라면 아무리 기억을 지운들, 헤어진 연인은 비슷한 사람과 만나 다시 연인이 되고 사랑에 빠진다는 거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사랑을 후회하고 헤어지고 다시 또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맘에 드는 이성을 보면 사랑의 아픈 결말을 예상하기보다는 새로운 설렘을 기대하며 사랑에 빠진다. 정말이지 사랑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실수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