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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Jun 12. 2024

최선의 삶

임솔아 장편소설, 사춘기

그녀가 나에게 다시 연락해 온 것은 5년 만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영재원 모임에서 알게 된 그녀는 우리 중에 가장 젊은 엄마였다.


'언니, 어떻게 지내요?'


여전히 밝은 목소리의 그녀였지만 어쩐지 힘이 없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이 녀석들이 자라서 세상을 구하는 인물들이 될 줄 알았다.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고, 영재원에서 한 달에 두어 번 만나는 모임에서 우리는 친해졌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좇아 대학을 진학하고 또 누구는 어디 의대를 갔단다 하며 말이 많던 엄마들은 하나둘씩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모임도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언니, 저 내일 뇌종양검사 때문에 서울 가는데 시간 되면 볼 수 있을까요?'


우리 중에 가장 어리기도 했지만 부지런했고, 늘 모임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뇌종양검사라니.'

벌써 마음이 쿵쿵거리며 걱정이 앞섰다.


삼성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서울숲에서 우리는 만났다.

통통했던 예전 모습은 어디 갔는지, 비쩍 마르고 여전히 긴 생머리의 그녀가 활짝 웃고 있었다.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며 가볍게 껴안았다.

두 딸아이를 키웠는데, 큰 아이가 우리 막내와 동갑이었고,

둘째가 지금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했다.


'아, 그래 우리 모임마다 따라다니던 그 꼬맹이가 고등학생이 되었구나.'


성수동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우리는 커피를 마주하고

잠시 옛날의 젊은 엄마들로 돌아갔다.

옅은 미소를 짓던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마음속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막내가 수업일수만 겨우 채워 중학교를 졸업했고,

다니던 고등학교는 그만두고 지금은 대안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알 수 없는 반항과 가출이 반복되었고, 술과 담배를 자주 해서 아빠와 많이 부딪힌다고 했다.

내 기억에는 티 없이 해맑은 아이였는데, 힘든 사춘기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이렇게 아픈 것도 아이들 때문인 것 같다고 자조했다.

지금은 대학을 안 가도 좋으니 대안학교만 무사히 졸업하길 바란다며 쓸쓸한 미소를 보였다.


임솔아작가의 '최선의 삶'이라는 소설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부모들의 무언의 기대와 그들의 안전한 틀을 벗어나고 싶은 아이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

넘을 수 없던 벽을 그들은 힘들게 마주한다.

소녀들은 그들의 세계에서 폭력을 경험하고 알몸으로 하나 되며 서로의 존재가 전부인 시절을 보낸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살인미수와 같은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아도 될 것들을 온몸으로 겪게 된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작가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강이'가 가출했을 때

자식의 아픔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며 새벽마다 물을 떠 놓고

두 손 모으던 강이 엄마의 기도와 바람이 마음에 더 와닿았다.


초등학교 시절 영재원에 다니는 언니를 따라다니며

해맑게 웃던 그녀의 막내를 기억했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그 아이도 지금은 방황하고 나빠지고 있는 것인가?

 

폭풍우에 휩쓸린 듯 망망대해에서 바람 부는 대로 달아나고 싶은 것일까?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그 아이도

나름의 '최선을 삶'을 선택하고 있는 것일테다.


나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그저 가만히 들어주었다.

좁은 지방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옮겨지고

주홍글씨처럼 아이의 마음에 새겨질 문장들이 엄마로서 그녀는 두려울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아이처럼 작아져 있었다.


그녀의 가녀린 손을 가만히 잡아 주었다.


우리도 엄마로서 '최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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